노조, 임금억제→회사, 고용창출→정부, 감세
노사정 고통분담…82년 바세나르 협약 모델
노사정 고통분담…82년 바세나르 협약 모델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은 세계적 경제위기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해고 선풍이 일고 있는 일본에서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하는 ‘일자리 나누기’(워킹 셰어링)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정치는 근본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노동조합은 경기후퇴 속에서 임금 인상을 주장하는가 하면 경영자는 맨 먼저 고용 삭감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26년 전 네덜란드의 실험(워킹 셰어링)을 참고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경제계와 산업계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비정규직이 대량 해고의 칼바람 앞에 놓인 상황에서 고통 분담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후생노동성은 26일 내년 3월까지 자동차업계를 중심으로 파견노동자 5만7천명 등 8만5천명의 비정규직이 감원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11월 말 후생노동성이 3만명으로 내다봤던 비정규직 해고자가 1개월 새 2.8배로 늘어난 것이다. 후생노동성은 또 기숙사 생활을 하던 2100여명이 길거리로 내몰릴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취업 내정자의 내정 취소도 잇따라 769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에서 일자리 나누기는 정규직 사원에게 단시간 근무를 인정하게 해 고용을 늘리는 네덜란드의 ‘고용창출형’이 아니라, 1인당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을 유지하는 독일과 프랑스식 ‘긴급피난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는 내년 1월 일본 국내 전 공장에서 사흘간 휴무일을 설정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심야수당 등을 받지 못해 봉급이 줄어들게 된다. 경영진 쪽도 비정규직 감원 등을 최소화해서 고용 유지에 최대한 노력한다는 것이다.
앞서 1999년 히노자동차가 하루 8시간 근무를 7시간으로 줄여 인건비를 10% 깎는 대신 고용 유지에 애를 쓴 적이 있다. 자동차총연합회와 전기연합회 등 일부 노조는 물가 상승을 이유로 내년 봄 노사협상에서 전년 수준을 넘는 임금 요구를 제시할 방침이나, 노조 일각에서는 “고용을 유지하는 쪽이 현실적이다”라는 이견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는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맺어, 노조는 임금 억제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경영진은 고용 기회를 늘리고 정부는 감세를 하기로 합의했다. 실업난을 극복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규직 사원의 단시간 근무를 인정하는 본격적인 일자리 나누기가 도입되며 경제가 호전됐다. 당시 10% 안팎의 높은 실업률을 보였던 네덜란드는 새 고용모델 도입으로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고용도 창출됐다. 일하는 여성이 늘고 다양한 노동방식이 뿌리내렸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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