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일 ‘새역모 교과서’ 또 검정 통과
“후소사판과 내용 95%가 일치”
일 시민단체 검정에 의문제기
“후소사판과 내용 95%가 일치”
일 시민단체 검정에 의문제기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지유사판 교과서 내용은 2005년 후소사판의 복사본 또는 표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본 시민단체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95%가 같고, 도판과 사진 정도가 바뀌었을 뿐”이다. 당연히 내용은 한국을 깎아내리고 일본엔 유리한 역사 왜곡을 담고 있다.
우선 한·일 학계에서 모두 부정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실었다. 교과서는 “야마토 조정이 한반도 남부의 ‘임나’라는 지역에 거점을 구축했다”며 “조선반도에서 95개국을 평정했다”고 주장했다. 후소사판을 그대로 옮겨왔다.
임진왜란을 두고선 “두 차례에 걸쳐 행해진 출병에 의해 조선의 국토와 사람들의 생활은 현저하게 황폐해졌다”며 조선 침략을 ‘출병’으로 서술했다. 조선통신사에 대해선 “조선으로부터는 쇼군(장군)이 바뀔 때마다 조선통신사라고 하는 사절이 에도를 방문해 각지에서 환영을 받았다”며, 임진왜란 뒤 양국의 문화교류를 위해 파견한 조선통신사를 마치 일본 쇼군 축하사절단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
특히 한국 병합 뒤 설치된 일제 조선총독부에 대해 “철도·관개 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개발을 하고 토지조사를 개시했다”며 “이 근대화 사업에 의해 그때까지의 경작지에서 쫓겨난 농민도 적지 않았다”고 적었다. ‘근대화’라는 단어는 후소사판에도 없던 것으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미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선 후소사판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 등 일본의 34개 교과서·시민단체는 이날 “역사 왜곡, 전쟁 찬미, 헌법 개정, 전쟁을 하는 나라를 지향하는 위험한 교과서”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특히 지유사판과 후소사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표명한 국제적 약속과 명백히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박이 우익 교과서 두 권의 등장은 기본적으로 새역모 내부 세력 사이의 갈등과 대립에서 비롯됐다. 후지산케이그룹 계열사인 후소사는 애초 새역모 역사교과서를 출판했지만 채택률이 0.39%에 그쳐 막대한 손해를 입자, 2007년 초 이 교과서 대표 집필진인 후지오카 노부카쓰 당시 부회장(다쿠쇼쿠대학 교수) 쪽과 결별했다. 대신 새역모를 탈퇴한 인사들이 중심이 된 ‘교과서 개선모임’과 손잡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새역모는 이번엔 지유사를 통해 별도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 신청을 했다.
이용인 기자,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항의 주체·대상 직급은
2005년 비해 훨씬 낮아
일본 지유사 교과서의 검정 통과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9일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강경한 어조로 비난했다. 하지만 실제 외교적 조처들은 가장 낮은 수위로 이뤄졌다.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이번 교과서 검정 통과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에 근본적인 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2005년 후소사 등의 교과서 검정 통과 사태를 놓고 당시 한국 외교부가 발표한 성명보다 목청을 높였다. 당시에는 ‘강력히’라는 단어도 없었고, ‘항의한다’는 표현 대신 ‘유감을 표시한다’고 언급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비난의 강도가 높다. 그럼에도 공식 성명과 별개로 한국 정부가 이날 취한 외교적 조처들을 보면 문제가 크게 확대되기를 바라지 않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 정부는 이날 오후 조태영 외교부 동북아국장이 다카하시 레이이치로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하도록 했다. 그러나 2005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 때는 당시 이태식 외교통상부 차관이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공민교과서의 기술 내용을 삭제하도록 요구했다. 항의 주체와 항의 대상 측면에서 보면 외교적 의전의 격이 이전보다 훨씬 낮아진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에는 8종 교과서에 대한 검정이었다”며 “지금은 (지유사 출판사의 1종만이 통과돼서) 상황이 다르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이처럼 일본 교과서 문제에 대해 ‘확전’을 꺼리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긴밀해진 한-일 관계의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정책적 판단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20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재일동포 리셉션에서 “일본에 대해 맨날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며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강조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또 올해 3·1절 경축사에서 ‘대일 메시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대일 중시’ 자세를 보였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항의 주체·대상 직급은
2005년 비해 훨씬 낮아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9일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통과 와 관련해 적극적인 대응과 일본의 위험한 역사인식에 대해 우려하는 항의 회견을하고있다.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일본 지유사 교과서의 검정 통과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9일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강경한 어조로 비난했다. 하지만 실제 외교적 조처들은 가장 낮은 수위로 이뤄졌다.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이번 교과서 검정 통과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에 근본적인 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2005년 후소사 등의 교과서 검정 통과 사태를 놓고 당시 한국 외교부가 발표한 성명보다 목청을 높였다. 당시에는 ‘강력히’라는 단어도 없었고, ‘항의한다’는 표현 대신 ‘유감을 표시한다’고 언급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비난의 강도가 높다. 그럼에도 공식 성명과 별개로 한국 정부가 이날 취한 외교적 조처들을 보면 문제가 크게 확대되기를 바라지 않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 정부는 이날 오후 조태영 외교부 동북아국장이 다카하시 레이이치로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하도록 했다. 그러나 2005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 때는 당시 이태식 외교통상부 차관이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공민교과서의 기술 내용을 삭제하도록 요구했다. 항의 주체와 항의 대상 측면에서 보면 외교적 의전의 격이 이전보다 훨씬 낮아진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에는 8종 교과서에 대한 검정이었다”며 “지금은 (지유사 출판사의 1종만이 통과돼서) 상황이 다르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이처럼 일본 교과서 문제에 대해 ‘확전’을 꺼리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긴밀해진 한-일 관계의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정책적 판단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20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재일동포 리셉션에서 “일본에 대해 맨날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며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강조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또 올해 3·1절 경축사에서 ‘대일 메시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대일 중시’ 자세를 보였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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