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방문 중이던 우이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23일 저녁으로 예정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귀국길에 올라 일본 정부가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다른 나라를 공식 방문한 외국 고위 관리가 그 나라 정상과의 회담을 불과 몇시간 앞두고 취소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호소다 히로유키 일본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 총리와 우 부총리의 회담이 중국 쪽의 요청으로 갑자기 취소됐다고 밝혔다. 아이치 만국박람회를 둘러보기 위해 지난 17일 일본에 와 24일까지 머물 예정이었던 우 부총리는 이날 중의원 의장 면담·심포지엄·오찬 등에 참석한 뒤 오후에 서둘러 귀국했다. 중국 쪽은 오전 10시께 “국내에서 긴급 공무가 생겨 본국 정부의 지시로 오후에 귀국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통보를 일본에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호소다 장관은 긴급 공무의 내용에 대해선 “모른다. 앞으로 설명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나는 (두 나라 관계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왔다”면서 “저쪽이 만나고 싶지 않다면 만날 필요가 없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정치권에선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 16일 중의원에서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외국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며 참배 강행 의사를 비친 것이 중국을 자극했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쪽의 갑작스런 회담 취소에 대해 집권 자민당에서 “외교 관례상 실례”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두 나라 관계가 한층 악화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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