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용어 줄고 시청각 요소 늘어
“빠른 진행 되레 피고에 불리” 주장도
“빠른 진행 되레 피고에 불리” 주장도
지난 3일부터 시작된 일본의 한 살인사건 재판에 일본 열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72살의 노인이 이웃집에 사는 한국 국적의 65살 여성을 칼로 찔러 살해한 흔한 형사 사건 중 하나이지만, 재판 첫날부터 언론사 기자들이 100명 이상 재판장인 도쿄지방재판소 주변에 몰려들고 방송사들은 시시각각 공판내용을 생중계했다. 좌석이 100석이 넘지 않는 법정 입장권을 얻기 위해 1000~2000명의 시민들이 땡볕 아래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일본 국민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 속에 막이 오른 국민참가형 ‘재판원 제도’는 법원주변 풍경 뿐아니라 재판과정과 내용 자체를 크게 바꿔놓고 있다.
먼저 재판에 문외한인 일반시민 재판원 6명이 알기 쉽게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각적인 요소가 등장했다. 법정 벽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는 범행현장의 집과 위치도가 제시되고, 재판원 앞의 모니터에도 같은 내용이 비춰졌다. 검사나 변호사들도 까다로운 법률 용어 대신 평범한 말을 쓰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이틀 동안 한 명밖에 질문을 하지 않았던 재판원들은 5일에는 전원이 질문에 참가하는 등 재판원 역할에 적응해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변화는 통상 6개월~1년 이상 걸리는 재판의 속도가 크게 빨라졌다는 점이다. 재판개시 사흘 만인 5일 검찰은 징역 16년을 구형했다. 이날 오후 재판원과 재판관이 함께 모여 유죄 여부와 양형을 결정하는 ‘평의’ 작업을 벌인 뒤 6일 선고를 한다. 한국의 국민참여 재판제도(2012년 전면시행)의 경우 배심원들의 의견이 법관에게 권고적 효력만을 갖는 데 비해 일본의 재판원들은 양형작업에 직접 참가한다.
그러나 재판원의 부담 경감을 중시한 속전속결식 재판원 제도가 피고인에게 불리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와타나베 오사무 고난대 법대 교수(형사소송법)는 “재판원 제도가 형사소송이 지향하고 있는 ‘사안의 진상규명’과 ‘공정한 양형’의 실현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재판원 제도가 졸속재판이 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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