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양국 지식인들이 공동의 역사인식을 담은 성명을 내자는 아이디어는 김영호 유한대 총장에게서 처음 나왔다. 그는 해가 저물어가던 지난해 12월16일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그런 생각을 처음 털어놓았다. 사흘 뒤 도쿄로 날아간 김 총장을 와다 교수와 오다가와 고 전 아사히신문 편집위원, 사카모토 아쓰시 <세계> 편집장이 맞아주었다. 넷은 그 자리에서 손을 맞잡았다.
한국에서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인사들이 흔쾌히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학문적 의견 차이로 서로 서먹해져 있던 이들을 모으기 위해, 김 총장은 호별 방문을 마다하지 않았다. 일본쪽에서는 와다 교수와 오카모토 아쓰시 <세계> 편집장 등이 중심이 되어 실무작업에 나섰다.
성명 초안은 일본에서 작성했다. 이어 한국 쪽이 만든 안을 일본에 넘겨, 종합안을 만들었다. 성명문안은 크게 5번의 수정을 거쳤다. 한국쪽 초안은 짧았지만, 일본 쪽은 “정확한 역사 서술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일본쪽 의견에 따라 1875년 일본이 강화도에 군함을 파견해 조약을 강요할 때부터 1910년 병합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길게 서술하면서, 성명문은 길어졌다. 서명은 각국에서 각 100명씩을 목표로 4월 하순 시작했다.
1910년 병합조약과 관련해 “조약체결의 절차, 형식에도 중대한 결점과 결함이 발견된다”는 문구는 여러 차례 수정이 가해진 대목이다. 처음에는 ‘결점’이었던 것이 ‘많은 결점’으로, 마지막에는 ‘중대한 결점’으로 바뀌었다. 물론 한국 쪽의 거듭된 수정 요청을 일본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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