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누출 없다더니 2시간 뒤 “가능성 있다”
일 정부 진상파악 못하고 잦은 번복으로 신뢰 추락
도쿄전력은 축소·늑장보고
일 정부 진상파악 못하고 잦은 번복으로 신뢰 추락
도쿄전력은 축소·늑장보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 그런 말을 할 계제가 아닙니다.”
16일 오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에서 불이 난 뒤 열린 기자회견. 상황 설명에 나선 도쿄전력 관계자와 기자들 사이에선 날카로운 신경전이 펼쳐졌다. 대지진과 초대형 해일이 발생한 11일 1호기에서 폭발이 일어난 뒤 도쿄전력이 줄곧 “별문제는 없다”는 식으로 관련 정보를 축소·은폐해온 데 대한 광범한 불신으로 빚어진 광경이다.
도쿄전력이 첫날 늑장보고를 하는 바람에 일본 정부가 상세한 설명에 나선 것은 사고 발생 5시간이 지나서다. 더욱이 일본 정부 대변인인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도쿄전력의 말만 믿고 “방사능 누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장담하다가 불과 2시간 반 만에 “누출 가능성이 있다”고 번복해 빈축을 샀다. 일본 정부의 발표대로 별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던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도쿄전력과 에다노 장관의 발표는 3호기, 2호기, 4호기 차례로 수소폭발 또는 화재가 발생하면서 계속 바뀌었다.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는 듯했다. 실제 사고가 생긴 데 대해서만 문제를 인정할 뿐, 상황 악화 가능성은 없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국내외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우려를 제기하면 국민들에게 지나친 공포를 부추길 수 있다는 ‘패닉이론’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그러나 상황이 정부의 발표와 정반대로 악화 일로를 걷자 마침내 일본 안팎에서 불신이 폭발했다. 적어도 ‘안전’ 문제에 대해선 가장 믿을 만한 나라로 꼽혀온 일본의 신뢰도가 단번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국 <시엔엔>(CNN)은 2호기까지 폭발한 15일 “도쿄전력이 또 거짓말을 했다”고 맹비난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6일 미국 유력지들의 보도 태도를 전하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한 비난이 “국제사회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일본 국내에서도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이 ‘괴담’을 양산하고 억측에 따른 불안감을 높여 공황상태(패닉)를 낳을 우려가 크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원전 안전사고 은폐와 점검 허위기재 등 도쿄전력의 과거 전력도 불신을 더해주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정부가 내놓은 것은 “낙관적 정보뿐”이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마이니치신문>은 ‘정보는 위기관리의 요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신뢰할 만한 곳의 신속한 정보 제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은 신종플루 사태 때 이미 체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정부는 지금까지 뭐든지 괜찮다고 해왔다”며 “국민을 믿고 확실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촉구했다.
박희제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원전사고 등을 통해 깨달은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와 사업자는 상황의 어려움과 자신의 한계, 불확실성을 충분히 알려 시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참여와 역할 분담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중언 기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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