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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대피소 어린이 10만명…“집이 흔들려요” 밤마다 악몽

등록 2011-03-21 20:21수정 2011-03-22 11:29

이재민들 자지도 씻지도 못한채 각종 질병 시달려
주검보관서 포화상태…신원확인 못한채 매장도
[일본 동북부 대지진] 피난살이 열흘째 커가는 고통

“다시 일어서야 하는데….”

일본 동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해일(쓰나미)이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21일. 간신히 살아남은 피해지역 주민들의 피난살이는 여전히 팍팍하기 그지없다. 하루빨리 기운을 차려 새 삶을 꾸리겠다는 다짐도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피해와 더딘 복구에 무너지기 일쑤다.

■ 대피소는 ‘종합병동’ <마이니치신문>이 가장 피해가 큰 미야기·이와테·후쿠시마현의 대피소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재민들의 심신 상태가 나날이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피생활이 열흘을 넘어가면서 대피소는 종합병동을 방불케 한다.

위장의 세균 감염으로 토하거나 설사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난방이 충분치 않고 따뜻한 음식은 하루에 한차례밖에 먹을 수 없다. 감기는 물론 인플루엔자 환자들도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의약품은 태부족한 상태다. 단수로 물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화장실 가기가 두렵기만 하다. 21일 현재,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는 곳은 11개현 88만가구에 이른다. 좁은 곳에서 몇백명이 끼어 제대로 자지도 씻지도 못해 ‘대피소 스트레스’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악몽 꾸는 어린이들 특히 어린이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심각하다. 부모나 형제를 잃은 상실감, 최악의 지진과 쉴 새 없는 여진의 공포, 방사능의 그림자, 추위와 고통으로 악몽에 시달리기 일쑤이며, “집이 흔들려요. 집이 싫어요”라며 수시로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대피소를 둘러본 국제 아동구호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의 이언 울버턴 대변인은 “석유난로 옆에서 담요를 덮어쓴 절망적 상태의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고 전했다. 이번 참사로 대피생활을 하는 어린이가 10만명에 이른다고 이 단체는 전했다.

무엇보다 35만명이 넘는 피난민들을 힘들게 하는 점은 이런 열악한 생활이 조만간 끝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완전히 수습돼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아직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진해일에 초토화된 마을에선 희생자들의 주검을 정리하고 건물 잔해를 치우는 것조차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 주검·잔해 처분 난망 현재 주검이 하루에 1000구 정도씩 발견되지만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다. 학교 체육관과 같은 임시 보관시설은 포화상태인데 주검의 신원 확인이나 유족 찾기가 매우 힘들어 화장 등 후속 절차를 밟기가 어렵다. 그사이 주검은 빠르게 부패해간다. 보다못한 가마이시시 당국은 25일부터 신원 확인이 안 된 주검도 부패할 경우 단계적으로 흙에 묻기로 결정했다.


복구의 또다른 걸림돌은 바닷물에 떠내려온 자동차나 덩치 큰 가재도구들이다. 중장비를 동원해 하루빨리 치워야 하지만 나중에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까봐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정해진 절차나 매뉴얼을 ‘교과서’처럼 여기는 일본의 경직된 문화 때문에 누구도 나서서 결정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미야기현의 한 초등학교 교정엔 창문이 부서지거나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가 100대 정도 방치돼 있다. 작업 지휘를 맡은 자위대원은 “소유자를 일일이 찾아 승낙을 얻을 수도 없고…”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주검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우려 또한 잔해 처분 작업을 더디게 만든다.

■ 방사능 탓 농사 고심 후쿠시마, 이바라키 등 원전에 가까운 지역의 농민들은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도, 그만둘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다. 원전에서 60㎞ 떨어진 후쿠시마시에 양상추를 내다 파는 스즈키 유키오(61)는 “민감해진 손님들이 아예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 오늘을 끝으로 출하를 중단할 생각”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일본 정부는 원전 사태로 피해를 본 주민들에게 직접 배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배상금 총액은 10조원이 넘으며,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은행은 21일 일본 대지진 보고서에서 재산 피해 규모를 1230억~2350억달러(1150조~2644조원)로 추정하면서, 복구에 5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박중언 기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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