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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방사능보다 물·먹을것 부족해 더 힘들다”

등록 2011-03-23 21:28수정 2011-03-24 08:31

임시 급수대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타이라지구의 워싱턴호텔 옆 공원에 임시로 마련된 급수대에서 주민들이 물을 긷고 있다.
임시 급수대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타이라지구의 워싱턴호텔 옆 공원에 임시로 마련된 급수대에서 주민들이 물을 긷고 있다.
일본 동북부 대지진
인구 33만명 후쿠시마 최대도시가 ‘유령도시’로
가정 60% 단수…식료품가게 열기전부터 긴줄
구호물자, 일반인에 배포…“시 전체가 피난소”
‘버려진 도시’ 이와키 르포

미스터 도넛도, 야마토 패션도, 와타나베 보석가게도, 미즈호 은행도, 카페 스탄자도, 이시카와 성형외과도 모두 문을 닫았다. 식당도, 호텔도, 학원도, 꽃집도 휴업 안내판도 없이 문을 열지 않았다. 열차, 전철, 시내버스도 모두 멈춰서 있다. 23일 오전, 눈발이 조금 섞인 비가 간간이 내리고 차가운 바람마저 부는 이와키시는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어 마치 ‘유령의 도시’ 같았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남쪽에 있는 인구 33만명의 후쿠시마현 최대 도시에선 이날 아침에도 진도 5의 강한 여진이 10여분 사이에 두 차례나 일어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는 지진이나 해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전 11시 현재 이와키시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1.83마이크로시버트로 계측됐습니다.”

폐쇄된 이와키역의 외부 스피커에서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다. 전신을 노출했을 경우 약 20일이면 연간 인체허용치를 쐬게 되는 양이다. 그러나 이와키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방사능이 아니었다.

슈퍼마켓을 찾아가던 한 50대 여자는 “이 정도면 해가 없다고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어서 안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청에선 22일부터 안정 요오드제를 나눠 주고 있었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뜸했다. 시청 직원인 사토 히로유키는 “어린이를 둔 가정에서 문의가 많아 40살 미만인 사람에게 나눠 주고 있다”며 “따로 지시가 있을 때만 복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동북부 대지진 피해 현황
일본 동북부 대지진 피해 현황
문제는 여전히 극심한 물자 부족이다. 지진과 해일이 할퀴고 간 이와키시에선 60%의 가구에 수돗물이 끊겼다. 수돗물이 나오는 지역에 만든 급수대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남자는 20ℓ들이 물통 3개를 쇼핑 손수레에 싣고 왔다. 그는 “어제까지는 차를 끌고 왔으나 이제 휘발유도 떨어져 1㎞ 떨어진 집까지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유소 앞에는 전날 기름을 사지 못한 승용차들이 그대로 줄지어 서 있었다.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 몇몇 식료품점 앞에는 아침 8시부터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섰다. 우유와 달걀은 한 팩씩, 다른 식료품은 작은 포장으로 2봉지까지만 판다.

도쿄에서 이와키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조반도’는 나흘 전부터 왕복 고속버스가 운행하기 시작했다. 피난소에는 구호물자가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독자적인 배급·유통망을 갖춘 몇몇 대형 슈퍼마켓 외에는 물자를 전혀 공급받지 못해, 일반 시민들은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택시운전사 사토 요이오는 “주민 가운데 거의 절반이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갔다”며 “방사능 때문이 아니라, 물과 식료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 전체가 피난소”라고 말했다. 급기야 시청은 22일 피난소로 온 구호물자 일부를 시민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시민들은 외출을 삼가고 있다. 호텔 직원 마에다 지로는 “휘발유를 넣으려고 해도 주유소에 갈 휘발유조차 없는데, 괜히 배만 꺼지게 왜 돌아다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거리풍경은 외지인에게는 그만큼 위험이 크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와타나베 히로시 이와키시민코뮤니티방송 대표는 “이와키시는 위험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외지의 화물차 운전사들이 오지 않으려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와키시는 제1원전에서 가깝게는 25㎞, 멀게는 60㎞ 떨어져 있다. 북쪽 일부 지역은 ‘옥내대피’ 대상 지역에 해당하지만, 마치 이와키시 전체가 위험지역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는 게 문제의 뿌리라는 것이다.

지진해일로 괴멸되다시피 한 시 북쪽 히사노하마로 가는 길은 여전히 끊어져 있다. 남쪽의 오나하마도 길을 덮은 잔해만 겨우 치웠을 뿐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서, 외지로 피난을 떠난 사람들은 식료품을 가득 싣고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 전날 오후 도쿄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40대 남자는 식료품을 가득 넣은 골프백만한 가방을 보여주며, “먹을 것은 챙겨 갖고 가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그의 권고를 따라 도시락 3개를 급히 사오지 않았다면, 기자는 온종일 굶었을지도 모른다. 지진 13일째, 이와키 시민들은 그렇게 ‘버려져’ 있었다.

이와키(후쿠시마현)/글·사진 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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