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 ‘공포의 나날’
마스크, 생활 필수품으로
"뭉크 그림 '절규' 보는듯"
도쿄전력·정부 행태엔 분노
마스크, 생활 필수품으로
"뭉크 그림 '절규' 보는듯"
도쿄전력·정부 행태엔 분노
회사원 마에다 지로는 하루에도 몇번씩 회사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낀다. 지진은 분명히 일어나지 않았는데, 좁은 공간에 있으면 어지럼증이 더 심해진다. ‘지진멀미’다. 여진이 점차 가라앉으면서 사라지는 듯하던 증상은 지난 7일 규모 7.1의 강진이 일어나면서 다시 도졌다.
대지진이 일어난 지 한달이 돼가지만, 일본인들은 아직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각 지역에 진도 6 이상의 강한 여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일본인들 사이에선 3·11 지진보다 규모가 1가량 낮은 최대 규모 8의 여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염려가 퍼져있다. 시즈오카현에서 3월15일 일어난 6.4규모의 지진이 후지산 분화의 징조가 아니냐고 우려하는 전문가도 있다. 한 주부는 “지금도 머리맡에 손전등과 물병을 챙겨두고, 언제든 피난할 수 있는 옷차림으로 잔다”고 말했다.
“전기가 안 들어온다고 화장실 물도 안 내려갈 줄은 몰랐어요.” 대학생 이시하라 마코토는 “도시문명이 이렇게 허약한지 몰랐다”고 말했다. 손씻은 물을 재활용할 수 있게 전기펌프를 쓰는 변기들은 정전 때 골칫거리가 됐다. 전력생산 부족으로 도쿄23구를 제외한 수도권까지 하루 몇시간씩 전기가 끊기자 냉장이 필요한 생선 소비는 급감했다.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는 한두 개만 작동한다. 7일 강진으로 도호쿠 지방 400만가구에 전기가 또 끊기면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던 한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원전 방사능 사고 이후 마스크는 일본인의 일상에 필수품이 돼가고 있다. 지하철에 타면 열 중 셋 이상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시하라는 “뭉크의 그림 ‘절규’가 딱 지금 일본인의 처지를 그린 것 같다”고 말했다.
‘매뉴얼’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은 그래도 여전히 침착하다. 어느 일에서든 미리 정한 절차를 하나하나 따져 밟아가는 꼼꼼함과, 이를 기다려주는 인내심은 그대로다. 지진 이후 심각한 안전사고나 치안불안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피해지의 다양해져 가는 지원 요구에 맞춰 지원자를 연결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들도 크게 늘어나, 공식적인 지원체계의 빈틈을 메워가고 있다.
그러나 ‘은폐체질’ 도쿄전력과 ‘리더십 부재’의 일본 정부를 향한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가고노 다다오 고베대 대학원 교수는 <닛케이비즈니스> 칼럼에서 “고베 대지진 때 공무원들이 이끈 고베시에서는 주민을 공평하게 대한다는 원칙에 따라 충분한 물자가 확보된 뒤에 물자 배분을 시작했지만, 자원봉사자들에게 맡긴 니시노미야시에서는 가장 급한 곳부터 물자를 나눠줬다”며 “난국에는 조직력보다 급할 때 저력을 크게 발휘하는 개개인의 힘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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