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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벚꽃 피었을 때인데…‘고향의 봄’ 가슴앓이

등록 2011-04-10 21:12수정 2011-04-10 23:00

와타나베 마모루(80)
와타나베 마모루(80)
타향살이 피난민의 탄식
원전근처 오쿠마마치 주민
방사능 우려에 귀향 희미
90km밖 집단이주촌서 “집에 영영 못 돌아가나…”
2011년 3월12일 새벽 6시, 와타나베 마모루(80) 할아버지는 함께 살고 있던 딸(50)과 함께 후쿠시마현 오쿠마마치의 정든 집을 나섰다. 전날 오후 일어난 지진으로 엉망진창이 된 집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나니, 날이 밝자마자 피난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해안에서 5㎞ 떨어진 고지대라 지진해일의 위험은 없었는데,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유출사고가 일어났다고 했다.

“나와는 인연이 깊은 곳인데….”

후쿠시마 원전에는 그의 땀도 많이 배어 있다. 1967년 9월 후쿠시마 원전 1호기 건설이 시작됐을 때, 그는 요코하마의 건설회사에서 이곳으로 파견을 나왔다. 그는 1000t 무게를 들어올리는 대형 크레인 운전기사였다. 그가 크레인을 운전하는 모습은 원전 공사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왔다고 했다.

“도쿄로 송전을 시작한 뒤엔, 고맙다는 선물도 많이 받았지.”

그는 6호기(79년 완공)를 다 지을 때까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일했다. 원격지 근무 특별수당을 받아 돈도 모이자, 오쿠마마치에 집을 지어 정착했다. 거기서 남매를 낳았다. 오쿠마마치는 그렇게 그에게 제2의 고향이 됐다.

그러나 40년 가까이 산 집을 등질 때 그는 신분증도, 돈 한푼도, 날마다 먹어야 하는 약도 챙기지 못했다. 그저 옷 한벌만 걸치고 나왔다. 그때만 해도 한달이 되도록 집에 돌아가지 못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후쿠시마시의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들은 어찌 지내는지 몰라. 딸도 나미에마치에서 아빠랑 함께 지내던 자식들과 헤어져 아직 못 만나고 있지. 어디로 피난을 갔는지 모르니까. 중고차를 한대 사서 얼른 찾아가보려고 필요한 서류를 마련하고 있어. 모든 게 그립지. 특히 내가 직접 손질하던 정원이 가장 보고 싶어.”

다무라시 오고에체육관에서 보낸 할아버지의 피난 생활은 마냥 길어졌다. 그러나 원전 주변의 방사능 오염은 점점 심해져,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은 갈수록 희미해져갔다. 오쿠마마치는 중앙정부와 협의한 끝에 원전에서 90㎞가량 떨어진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쓰시로 주민들을 집단이주시키기로 결단을 내렸다. 주민 1만1400여명 가운데 2200명이 5일부터 본격 이전을 시작해, 이 가운데 1500여명이 히가시야마 온천지대 20여개 여관에 머물게 됐다. 피난민 가운데는 와타나베 할아버지처럼 원전에서 일한 사람이 적지 않다.


“피난소에서 지낼 때는 일주일에 두번밖에 목욕을 못 했어. 여기선 공짜로 온천욕도 하고 좋아졌지. 하지만 얼른 가서 집을 고쳐야 하는데….”

그러나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묻자 “그것은 현청도 모르고, 정부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부는 원전 주변 반경 20㎞ 안에 살던 피난민들에게 몇시간 동안 경찰관과 함께 집에 다녀올 수 있게 하는 ‘일시귀가’ 조처를 고려하고 있다. 와타나베 할아버지는 “우리 집은 5㎞밖에 안 떨어져 있어서…”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규모가 9나 되는 지진이 오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그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숙소로 발걸음을 돌리던 그가 작별인사를 하듯 기자에게 물었다.

“도쿄엔 벚꽃이 피기 시작했지?”

아이즈와카마쓰(후쿠시마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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