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양심의 자유 침해” 원고청구 기각
공립학교 행사에서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연주할 때 교사에게 국기를 향해 일어서라고 한 교장의 명령은 합헌이라는 일본 대법원(최고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학교 교육 현장에서 ‘국가주의’ 분위기를 확산시키려는 우파의 시도가 한걸음 더 전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일본 대법원은 30일 전 도립학교 교사인 사루야 유지(64)가 “2004년 학교 졸업식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할 때 교장의 명령을 어기고 국기를 향해 기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육위원회가 정년 뒤 촉탁교사로 재고용하지 않은 것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반된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교장의 직무명령은 합헌”이라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일본 국회는 1999년 일장기를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하는 내용의 ‘국기와 국가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 뒤 극우 성향의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가 이끄는 도쿄도가 2003년 공립학교의 입학·졸업식에서 국가를 부를 때 교원들은 기립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부 교사들은 일장기와 기미가요가 군국주의 사상의 정신적 지주로 이용돼온 것이라며 거부했고, 이를 이유로 도교육위원회가 200명 이상의 교사를 징계하면서 관련 소송이 시작됐다. 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은 기미가요 제창 때 기립하지 않는 공립학교 교사를 최고 면직 처분하는 내용의 조례를 만들려는 ‘오사카 유신회’의 움직임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부 지사가 이끄는 지역정당 오사카 유신회는 지난 26일 이런 내용의 조례안을 부의회에 냈다. 도쿄도와 오사카부 등이 국가 연주 때 기립할 것을 교사들에게 지시하고는 있지만,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징계 처분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조례를 만들려는 것은 오사카부 의회가 처음이다.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오사카 유신회의 조례안에 대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을 억제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한편 일본 대법원은 “학교 졸업식에서 피아노로 기미가요를 연주하라고 한 교장의 지시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해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교장의 지시를 거부해 징계당한 교사가 낸 소송을 2007년 기각한 바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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