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정부패 실상을 현지 르포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 일본 <아사히신문> 10월30일치 2면. ‘배금주의 구석구석에’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아사히신문 보도…심지어 뇌물 되사주는 가게까지
학교 병원 언론계 법조계 할 것없이 부정부패 만연
양심에 걸려 동료에 털어놓자 “다들 그렇게 한다”
* 홍바오(紅包) : 촌지
학교 병원 언론계 법조계 할 것없이 부정부패 만연
양심에 걸려 동료에 털어놓자 “다들 그렇게 한다”
* 홍바오(紅包) : 촌지
중국 동북지방의 30대 남자 교사는 수년 전 교사채용의 책임자가 됐다. 여러명의 남녀를 면접한 뒤 남성 1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꼭 채용해주었으면 한다.” 음식점에서 만난 남자는 고급술과 고급 담배와 함께 중국돈 1만위안(약 177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교사 초임 봉급의 4~5개월분이다.
여자한테도 연락이 왔다. 이 여성은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하겠다”며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말을 붙였다. 이 여성과는 하룻밤을 같이 한 뒤 5천위안(84만원)을 받았다. 다른 지원자가 우수했지만 결국 그는 두사람을 채용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0월30일치 1, 2면을 털어 돈과 연고관계가 지배하는 중국사회의 배금주의 풍조와 부정부패 실태를 현지 르포기사로 생생히 전하고 있다. 중국의 부정부패 사례는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지만 <아사히신문>의 이 특집기사는 학교 뿐아니라 병원, 언론계, 법조계 등 중국사회 곳곳에 만연된 부패실태를 상세하게 고발해 눈길을 끈다.
급격하게 자본주의화되었지만 권한이 여전히 소수 권력자에 집중된 중국 사회 곳곳이 돈과 커넥션으로 연결돼 서민들조차도 부패 구조에 물들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앞에 소개된 30대 남성 교사는 애초부터 부패 촌지교사는 아니었다. 일본에 유학해 대학원까지 나온 이 남성은 2000년대 초 중국에 귀국할 때만해도 “우수한 인재를 육성해 중-일의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청운의 꿈에 부풀었다고 한다. 귀국하자마자 대학의 채용시험에 응시했지만 채용담당자는 “성적은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응모자도 많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결과를 기다리던 중 대학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5만위안(885만원)으로 이야기해주겠다.”
거절하자 합격통지는 오지 않았다. 다른 몇몇 대학에도 채용시험에 응시했으나 역시 5만~10만 위안을 요구받았다. 그는 결국 고교 교사로 채용됐으나 이상에 불탔던 마음은 꺾였다.
고교 학급 운영도 ‘돈의 뜻대로’였다. 신입생의 엄마가 “우리 애를 반장(학급위원)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언제든 무료로 드셔도 좋다”는 말까지 했다. 상품권도 주었다. 대학입시 때 반장 경력이 있으면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1인자녀 정책’과 취직난으로 학벌주의가 강해지면서 부모들은 막무가내다. “내 자식의 자리를 맨 앞자리에 해달라” “아이에게 신경을 써달라”며 부모들은 촌지를 건넸다. 대학진학 시즌이 다가오면 촌지의 단위는 훨씬 높아진다. 이 교사는 부모에게서 금품을 받은 학생에게는 학급 앞줄에 모아서 정성껏 가르친다. 다른 학생들은 사실상 방치상태이다. 양심이 찔리는 때도 있어 동료 교사에게 상담하자 핀잔만이 되돌아왔다.
“모두 그렇게 한다. 자네는 이제 겨우 세상물정을 알게 됐네.”
상하이 상점가 한구석에는 ‘회수’라는 간판을 단 작은 가게가 있다. 뇌물로 받은 고급 물품을 되사주는 가게이다. 손님은 주로 눈길이 뜸한 저녁 무렵이 많다. 중국을 대표하는 고급전통주 ‘마오타이’와 고급담배 ‘중화’ 등이 거래된다. 월 4~5차례 방문해 매번 수만위안씩 돈으로 바꿔가는 고객도 있다.
40대 가게 주인은 “90%는 뇌물이나 사례로 받은 술이나 담배를 환전하는 공무원과 의사들”이라고 말했다. 거래된 술과 담배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흘러들어간다. 중국에서는 일상의 여러 장면에서 뇌물을 주고받는다. 병원에서도 제대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의사에게 ‘홍바오’라 불리는 촌지를 건네는 것이 거의 상식이다. 지난해 랴오닝성의 지방도시에서 출산한 30대 여성은 산부인과 의사에게 홍바오를 건네지 않았다가 입원료만 약 1만위안이 나온 걸 보고 놀랐다. 같은 병동의 여성은 같은 진료 내용인데도 수천위안이나 싸게 나왔다. 의사에게 2천위안의 홍바오를 건넸다는 것이다.
“촌지를 건네지 않으면 다른 부분에서 갈취당한다. 결국 같은 이야기다.”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라고 내건 병원은 많지만 촌지수수 관행은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광저우(광주)성 선전(심천)시의 병원에서 적은 홍바오에 불만을 품은 간호사가 앙갚음으로 출산의 혼잡한 틈을 이용해 임산부의 항문을 꿰맨 엽기적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뇌물은 ‘필요경비’와 같은 것이다. 동북지방의 음식점의 경우 가게 방재설비에 법령 위반 사항이 있다며 소방당국자가 1만위안 정도의 벌금을 부과하자 가게 주인이 1천위안을 소매에 찔러주었더니 벌금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가게 주인은 “돈을 주지 않으면 점점 귀찮아질 뿐”이라고 말했다.
최악의 탐관오리라는 오명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한 지방관리가 죽기 전에 털어놓은 뇌물수수 이야기는 부와 권력의 공생관계가 지배하는 중국의 구조적 부패 먹이사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장(절강)성 항저우(항주)시의 부시장이었던 쉬마이융은 십수년 동안 2억위안(254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고 올해 7월 사형을 당했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되돌아봤다.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이권이 커졌다. 초심을 잃어버리고 돈보다 앞서는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항저우시의 고급 별장지대에 위치한 3층짜리 고급주택은 중국 역사상 최악의 부패 관리의 활약 무대였다. 이 주택이 위치한 별장 지대는 애초 국가리조트 지대로 지정돼 주택개발이 불가능한 장소였다. 그러나 부동산회사의 의뢰를 받은 쉬마이융은 지방국토관리 간부에게 지시해서 개발허가를 받게 했다. 1만 위안의 사례금 이외에 대가로 이 호화 주택을 싼 값에 손에 넣었다. 별도의 부동산 회사에 돈을 준비시킨 뒤 특별대우 고객용 판매가격보다도 40% 가량 싼 142만 위안에 구입했다. 이 주택은 시장에 나오자 순식간에 수배로 값이 올라 500만 위안의 매매 차익을 올렸다.
쉬마이융은 항저우시 교외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동생 2명의 눈이 부자유한 상태로 결코 유복한 가정이 아니었다. 단과대를 졸업한 뒤 중학교 교사가 됐으나 25살에 발탁된 뒤 개혁개방 노선의 파도를 타고 매년 승진가도를 달렸다. 출장 기회도 늘어나면서 ‘특별한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다른 곳보다 한발 앞서 개발이 진행된 선전에서는 고급 호텔에 머물고 4천~5천 위안짜리 초호화 저녁식사 자리에도 초대받았다. 주위 기업 경영자는 매년 엄청난 돈을 벌어서 매년 1억 위안 이상 버는 사람도 있었다.
“내 자신과 별로 능력이 다르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부유하게 되는 것은 불공평하다.” 그는 이런 생각에 지배받았다. 권한을 최대한 이용해서 토지개발 이권에 손을 댔다. 다른 간부와도 인사와 이권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부정부패의 규모는 부풀어올라 1995년 이후 적어도 수십 건에 약 2억 위안의 뇌물을 수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적발된 부정부패사건만 연간 3만 건이 넘는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부정부패 실태를 최초로 정리한 백서 ‘중국 반부패와 청결한 정치의 건설’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전국에서 적발한 부정부패 사건은 뇌물수수와 공금 횡령만으로 약 24만 건에 이른다. 단순히 비교할 수 없지만 일본 경찰청 통계를 보면 일본의 지난해 부정부패 적발건수는 78건.
연간 3만 건조차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정부도 최근 최고인민법원 부원장과 철도부장 등 거물급 관리들의 부정부패 사건을 잇따라 적발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고위 관료들의 자산공개 제도를 만드는 등 예방책도 마련 중이다. 그러나 검찰과 판사까지 부패 체질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좀처럼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부패한 언론도 한몫을 한다. 어느 기자는 지방 도시에서 철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항의하는 주민들의 취재를 시작했다. 지방 당국자가 “함께 식사라도 하자”고 접근해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 “기사를 쓰지 말라”고 설득을 당한 뒤 제3자를 통해서 현금을 건네받았다. 이른바 입막음 돈이었다. 결국 기자는 취재를 포기했다.
2008년 산시(산서)성의 탄광에서 사망사건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것도 중앙·지방지 6개 신문과 텔레비전의 기자가 탄광회사쪽으로부터 광고비와 구독료 등 명목으로 2천~5만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입막음 돈을 노리고 기자인 척하며 취재하러 온 남자들도 거액의 금품을 갈취했다.
중국에서는 유리한 기사를 써달라며 기자회견에 온 기자들에게 촌지를 건네는 일이 많다. 기자들도 금품을 수취하는 일에 저항감이 적다. 촌지 등의 급여 외 수입은 일반적인 기자의 경우 연간 5천~1만위안에 달한다. 중앙 일간지 기자의 경우 “한자리수가 다르다”고 한 지방지 기자는 전했다.
김도형 선임기자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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