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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애인보다 남편이 더 소중해”

등록 2011-12-15 15:26수정 2011-12-15 17:14

본 이미지는 해당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한겨레> 자료 사진
본 이미지는 해당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한겨레> 자료 사진
3·11 대지진 이후 일본에 부는 불륜관계 청산 바람
“3·11 대지진 발생 이후 사흘간. 매일 그를 생각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운명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앞에서는 어설픈 관계네요. 불륜이라는 게….”

도쿄도에 사는 33살 여성은 조금 쓸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는 3·11 대지진 이후 불륜 관계에 있던 일본 기혼 여성들 사이에서 가족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불륜관계 청산 바람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앞의 33살 여성은 올 3월11일 오후 2시46분 근무지인 회사에서 지금까지 처음 체험한 심한 흔들림을 맛봤다. 5분 정도 지나 흔들림이 잦아든 뒤 휴대전화를 보았더니 “괜찮아?”라는 짧은 휴대전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남편으로부터였다. 서둘러 답장을 보내려고 했지만 벌써 전화도 메일도 연결되지 않았다. 빨리 남편을 만나 무사함을 전하고 싶다는 그 일념으로 추운 날씨 속에 5시간 걸려 집에까지 걸어갔다. 먼저, 귀가해 있던 남편으로부터 “어서 와”라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최근 섹스도 좀처럼 하지 않은 상태로 대화도 적은 남편이었지만 지진의 순간에 맨 먼저 나에게 마음을 써줬다. 그것이 기뻤습니다.”

남편의 친척이 이와테현에 살고 있어서 그 주말은 안부확인에 정신없이 바빴다. 일요일인 13일 남편과 둘이서 만약의 사태 때 들고나갈 주머니를 싸는 준비를 했다. 그때 불륜 상대인 그로부터 지진 뒤 처음 휴대전화 메일이 도착했다. “내 집은 괜찮다. 그런데 원전이 폭발해서 무섭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런 내용이었다.


그는 회사의 전 동료다. 어린 아이도 있고 전업주부인 부인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반년 정도 전부터 둘이서 식사하러 가거나 술을 마시러 가게 됐다.. 밤에 길을 걸으면서 손을 잡았다. 그것만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처음으로 키스한 밤은 하룻밤 사이 그의 입술의 부드러움을 반추했다. 그가 좋아하는 머리모양으로 바꾸기도 했다. ‘나, 사랑하고 있나 봐’ 그런 생각이 기뻤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부인과 아이가 있고 나에게는 남편이 있어요. 만약 방사능에서 도망간다면 함께 행동할 상대는 역시 가족. 그 현실을 깨닫고 나서 급속이 마음이 식었습니다.”

그와는 차례로 소원하게 됐다. 휴대전화 메일에 답하는 횟수가 줄고 메일의 문자도 단문으로 변했다. 10월 이후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에라>가 남편 이외에 연애관계를 맺고 있는 기혼여성 21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자체조사한 결과에서도 3·11 대지진 이후 불륜관계의 새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앞의 30대 여성처럼 지진 당일 통신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한 것은 남편과 애인중 누구였느냐는 질문에 대해 압도적으로 남편이라는 답이 많았다. 전업주부 가운데 30대 여성은 남편이 100%, 40대 여성은 76%였다. 전업주부 이외의 여성도 30대 92%, 40대 75%로 비슷한 결과였다. 맨 먼저 궁금한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남편과 애인 가운데 어느 쪽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느냐?’라는 질문에서도 역시 남편이 단연 많았다. (전업주부 30대 85%, 40대 81%/ 전업주부 이외 30대 86%, 40대 77%)

‘남편과 애인 어느 쪽을 보다 걱정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애인보다는 남편’이라는 답이 훨씬 많았다. (전업주부 각각 68%, 57%/ 전업주부 외 60%, 54%)

‘애인이 자신의 부인과 당신 중 어느 쪽을 보다 걱정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도 자신의 부인이라는 답이 많았다. (전업주부 각각 64%, 65%/ 전업주부 외 61%, 43%)

또 ‘대지진을 계기로 불륜상대인 그에 대한 감정은 어떻게 변했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애인보다는 남편이나 가족을 소중하고 생각하게 됐다”, “남편과의 생활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이 늘었다.” 등을 고른 사람이 많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만약 자신이 불륜상대와 함께 있다가 지진으로 사망한 경우 남은 남편은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들을까 생각해보면 비상식적인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치바현에 사는 40대 회사원은 지진 뒤 애인과 육체적 관계는 일체 갖지 않고 앞으로 만나는 것 자체를 끝내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진을 계기로 기분이 변화했다. 관계를 해소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아이치현·30대 전업주부)

“지진 이후 만나는 횟수도 크게 줄었다. 심적으로도 남편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도쿄도·40대 회사원)

“남편이 나를 최우선으로 걱정해주는 것을 알고 이제부터 남편을 소중하게 생각하자고 생각했다.”(사이타마현·30대 회사원)

수도권의 이재 지역에 사는 30대 전업주부는 원래 이혼 얘기를 꺼낼 생각이었던 남편과의 관계를 지진을 계기로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남편은 자기 마음대로 사물을 판단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진 직후 맨 먼저 일터에서 날아돌아온 뒤 아이와 나를 걱정해주었다. 밤에도 옆에 있어주고 솔선해서 집안 정리도 해주었다.”

그렇지만, 방사능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 지진 이후 급료 삭감 등이 부부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도형 선임기자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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