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일본

“핵시스템, 국민을 속이고 결국 버린다”

등록 2012-03-27 21:27수정 2012-03-27 22:31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
원전의 희생강요 바탕엔
전쟁미화 야스쿠니 사상

대지진 이후 혼란 틈타
하시모토 등 극우파 득세
“독일 나치 시절과 비슷”

핵안보정상회의서 보듯
핵시스템 국경 넘어 공생
고리원전 은폐, 일본과 닮아

 후쿠시마와 오키나와. 얼핏 떨어져 있는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일본의 두 지역은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철학자인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55·교양학부)가 올해 1월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오키나와>라는 책을 펴내기 전까지 이 두 지역의 밀접한 관련성에 주목한 사람은 없었다. 미증유의 사고 1년이 넘도록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와 1971년 미군의 지배에서 벗어나 일본정부에 반환된 뒤에도 주일미군 시설의 74%가 집중돼 있는 오키나와. 이 두 지역을 관통하는 것은 희생을 강요하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시스템이 있다는 게 다카하시 교수의 주장이다. 후쿠시마 원전 1년 동안 원전의 위험성을 분석하고 경고하는 저작들은 무수히 나왔지만 큰 틀 안에서 일본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책은 많지 않았다. <도쿄신문>은 지난 1월31일치 2개 면을 털어 저자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전쟁책임론 문제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야스쿠니 사상, 논리의 본질을 파헤쳐 날로 우경화 보수화되어가는 일본사회에 경종을 울려온 다카하시 교수는 희생을 강제하는 뿌리를 야스쿠니 사상에서 찾고 있다. 지난 23~24일 경남 합천에서 열린 ‘2012년 합천 비핵평화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다카하시 교수를 지난 22일 서울 시내에서 만났다.

 그는 철학자로서 희생이라는 개념과 관념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던중 일본과 아시아의 문맥에서는 야스쿠니 문제야말로 희생의 시스템이라고 생각왔다고 말문을 꺼냈다.

 “1945년 이전에 국민이 군에 동원돼서 전쟁에서 전사했을 때, 그것을 국가를 위한 존엄한 희생이라고 해서 공적을 찬양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왔다. 본래는 전사라는 것은 비참한 죽음인데 마치 아름답고 숭고하고 존엄한 것이라는 듯이 찬양함으로써 국민을 다시 전쟁에 동원하는 장치가 야스쿠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야스쿠니 신사 또는 야스쿠니 사상의 중심에 희생의 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패전 이후 일본은 헌법 9조도 있어서 표면적으론 전쟁을 하지 않는 국가가 되어 있어 평화로운 경제국가라는 생각이 굉장히 일반화 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미-일 안보체제, 이른바 안전보장이란 이름으로 오키나와에 기지부담을 강제하는 또하나의 희생의 시스템위에 성립된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2009년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보면 오키나와를 희생으로 하는 일-미 안보체제가 얼마나 강고한 것인지는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맞이한 3·11 동일본 대지진과 연달아 발생한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를 보고 이중의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전에는 원전에 비판적인 입장이었지만 정면으로 그 문제를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방심했구나하는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내 고향인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나 것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희생의 시스템이 아닐까 느꼈다.”

 그는 구체적인 원전으로 인한 희생의 시스템으로 대형사고가 나면 사람이 희생되고 피난할 수 없는 상황, 원전 노동자의 피폭, 우라늄 채굴로 인한 피폭, 방사능 폐기물에 따른 희생 등을 들었다.

 “희생없이 원전이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후쿠시마 사고는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후 일본이라는 국가체제는 경제와 안전보장이라는 두개의 기둥 아래 유지돼 왔지만 안전보장의 경우 오키나와, 경제의 경우 원전희생이라는 체제에서 이뤄져 왔다.”

  그는 일본 정부가 미증유의 원전사고를 겪었음에도 재가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일본 보수파의 핵보유 야망과 국경을 넘어 작동하는 ‘핵의 정치·경제·군사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6~27일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도 그런 움직임이라고 주장했다.

 

 -3·11 특집 기사 취재차 일본 현지 취재한 인상으로는 일본이란 국가시스엠이 카오스 상태로 보였다.

 “우선 정치적으로 보면 분명히 혼돈 상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자민당이 신뢰성을 잃어 국민들이 민주당에 희망을 걸었으나 완전히 망치고 있다. 예컨대 후텐마 문제에 있어도 자민당과 같은 입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간 정권의 원전대응도 굉장히 문제가 많고, 노다 정권은 원전 재가동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 민주당 정권은 소비세를 인상하지 않지 않는다고 해놓고 소비세 인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져도 자민당이 오르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하시모토 도오루라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라고 불리는 현 오사카 시장(전 오사카부 지사)이 나타나 일본에서 필요한 것은 독재라고 호언하고 있다. 굉장히 우려스런 상황이다. 하사모토 시장은 ‘유신의 모임’이라는 지방정당, 제3의 정당을 이끌고 있는데 다음 총선거에서 제1당이 될 우려도 있다. 마치 독일에서 나치스 출현할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

 

 -노다 정부가 재가동 하려는 것은 그만큼 원자력 추진파들의 힘이 세다는 이야기인데.

 “여론조사를 보면 장기적으론 60~70%가 원전은 중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와 재계의 ‘원자력촌’의 힘이 세다. 그만큼 여론과의 격차가 넓어지고 있다. 원전 피해지역 잔해물 처리 문제만 봐도 정부와 여론의 차이는 크다. 정부는 후쿠시마 잔해물을 전국적으로 소각처리하려고 각 지자체에 이를 수용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각 지자체 주민들은 방사능이 확산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잔해물 처리문제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원전 사고와 관련해 일본 주류 언론 보도 문제는.

 “3·11 1주년을 맞아 언론들이 적지 않게 보도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많다. 3·11 이전에 신문들은 원전을 의심하기는 커녕, 안전신화를 국민들에게 침투시키는 역할을 짊어졌다고 할까. 전쟁 때 마치 전쟁추진 깃발을 들고 진실을 전하지 못했던 것 같은 대본영(일제의 전쟁수행본부) 보도 태도와 비슷한 측면도 있을지 모르겠다. 사고초기 도쿄전력와 정부 발표만을 그대로 흘려내 보내 국민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 모순이 있는 거 아니냐’고 언론보도에 불심감을 품을 정도로 결국 국민들의 의문을 풀어주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을 때 언론들의 취재진은 이미 철수하고 현지에 들어간 것은 프리저널리스트들이었다. 하토야마 정권 때 후텐마 기지 이전을 추진하려고 할 때 대형 언론들은 ‘일-미 동맹을 엉망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하토야마 포위망을 구축하기도 했다. 원전에 관해서는 <요미우리>와 <산케이>는 찬성, <아사히신문>은 분명치않고 <도쿄신문> 정도가 제대로 문제점을 보도하고 있을 정도이다.”

 -지진대국인 일본은 54기의 원자로를 갖고 있는 세계 3위의 원전대국이다. 엄청난 원전사고를 겪고도 탈원전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이상하다. 유럽의 몇개국은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정책을 바꿨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그렇지 않지만(웃음). 예컨대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확실히 원전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등 유럽 각국도 원전 철폐로 나가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지진국가로 더구나 지진 활성기에 들어온 상태에서 3·11 대지진 뒤 엄청난 여진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공포스런 상황인데도 재가동하려는 동기가 강렬하게 작동하고 있다. 왜 이럴까?”

 

 -보수파의 핵보유라는 목표 때문 아닌가?

 “책에도 썼지만 그것도 핵보유의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1969년 외무성이 만든 ‘우리나라의 외교정책 대강’이란 최근 공개된 극비문서를 보면 거기에 ‘(핵무기의 원료인)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고속증식로가 핵무기의 경제기술적 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라는 논의가 나온다. 그 무렵은 일본이 원전을 만들기 시작할 무렵인데 고속증식로 계획이 이미 존재한 것이다. 플루토늄을 처리해서 핵무기를 생산 가능한 기술을 일본이 갖는다는 것이 외무성 상층부가 논의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일본 안에서 쭉 존재해 왔던 것은 틀림없다.

 또한 후쿠시마 사고 초기 자민당 방위족 우두머리인 이시바시 시게루 당시 정조회장은 텔레비전과 잡지 등에서 ‘원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일정한 기간에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핵억지력’이라고 주장하며 ‘탈원전을 이야기하지만 핵억제가 없어지는 것인데 그래도 좋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전후 장기집권했던 자민당 방위족의 보스이므로 탈원전 흐름에 위기감을 느끼고 본심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

 그것은 일본뿐 아니라 핵의 정치 경제 군사시스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스템이 국경을 넘어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핵안보정상회의도 그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3·11 직후 미국과 프랑스 기술진이 후쿠시마 복구작업에 온 것도 후쿠시마 원전이 큰 사고로 이어질 경우 원전 자체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면 미국과 프랑스 등 원전대국에서도 원전운영을 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공통의 이해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총리나 자민당 유력 정치인인 고노 다로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원전이 돈이 많은 발전 형태 이므로 탈원전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탈원전이라면 뭐든 좋다는 게 아니라 왜 탈원전인가 하는 점이다. 내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원전이 희생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생명, 생활, 건강, 존엄을 희생 위에서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원전 대신하는 것이 좋다고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일 수가 있다. 보수파라면 국가를 위해 희생이라는 것은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므로 다른 희생을 가져올 수도 있다. 탈원전이라고 해서 정치사상과 관계없이 좋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다.”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핵의 정치·경제·군사시스템의 지배자들이다. 그것에 의해서 이익을 얻는 자들이다. 한국에서 원자력 마피아이고, 일본에서는 원자력촌에 갇혀 있는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부 경제산업성, 전력회사, 관련기업, 학자 등 전문가들이다”

 

 -탈원전이 어려운 것은 원전에 얽힌 어마어마한 돈 때문도 있는 것 같다. <엔에이치케이>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3조2천억엔 가량이 각종 보조금과 세금, 기부금 등이 원전 입지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제공됐다는데….

 “‘원자력 머니’가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불안해 하면서도 유치에 찬성한다. 물론 정부와 전력회사는 절대 안전하다는 말로 유치시킨다. 예컨대 야스쿠니의 역시 전사한 사람에게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주고 훈장을 수여하고, 오키나와의 경우에는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종의 대가의 의미를 가지고 돈을 투하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전사고가 나면 모두 끝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입지에 있는 후타바마치 촌장은 “돈이 확실히 들어온다. 그래서 여러가지 만들었지만 함 봐주세요. 어떻게 됐나요”라고 호소하며 도쿄전력과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교부금과 세금으로 마을에 멋있는 건물을 많이 세웠지만 모든 게 없어진 것이다. 원전이 없어지면 마을에 아무 거도 남지 않은 시스템이다. 원전만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에 다른 산업은 망치게 된다.”

 

 -한국정부는 적극적으로 원전을 추진하고 있다.

 “고리 원전 사고 은폐 건을 봐도 핵의 정치경제 군사시스템은 똑같다. 역시 이런 국제적인 시스템 안에서 같은 성격을 가진 원자력 마피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후쿠시마 사고 당시 “한국은 비상전력을 몇개나 확보해놓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호언했다. 그런데도 사고를 내고 은폐했다. 도쿄전력도 체르노빌 사고 때 “우리는 절대 안전하다”고 주장하다 사고를 당했다.

 핵의 정치경제군사시스템은 반드시 국민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사고를 감춘다. 일단 대형사고가 나면 후쿠시마 경우에서 드러나듯 국민을 버린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지금 버려지고 있다 방사능이 굉장히 높은데도 피난시키지 않고 있다. 표면의 흙을 깎아내면 괜찮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후쿠시마 어린이의 갑상선 이상이 보고되고 있다. 그런 것이 한국에도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글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북한산 정상에 ‘허스키’ 등 야생개 50마리 살아
하체만 뚱뚱한 당신, 왜 그런 줄 알아요?
“박근혜 손수조에 집착…” 문재인 조바심 때문?
심형래씨 패소…대출 이자 25억 갚아야
‘백로’를 강물 속으로 쳐박고 있는 이포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전쟁 멈춘 새…‘이스라엘 무기고’ 다시 채워주는 미국 1.

전쟁 멈춘 새…‘이스라엘 무기고’ 다시 채워주는 미국

“망연자실”…보행기 의지 95살 할머니에 테이저건 쏴 숨지게 한 경찰 유죄 2.

“망연자실”…보행기 의지 95살 할머니에 테이저건 쏴 숨지게 한 경찰 유죄

머스크, 한국 ‘인구 붕괴’ 또 경고…“3분의 2가 사라질 것” 3.

머스크, 한국 ‘인구 붕괴’ 또 경고…“3분의 2가 사라질 것”

미 “징집 연령 낮춰라” 촉구하자 우크라 “병력 충분, 무기 더 달라” 4.

미 “징집 연령 낮춰라” 촉구하자 우크라 “병력 충분, 무기 더 달라”

112년 최장수 남성…매일 신문 읽었고, 즐겨 한 말은 “고마워요” 5.

112년 최장수 남성…매일 신문 읽었고, 즐겨 한 말은 “고마워요”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