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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 ‘핵무장’ 법적근거 마련…동북아 ‘핵경쟁’ 촉발 우려

등록 2012-06-21 20:17수정 2012-06-21 21:59

중의원 통과 때까지 미공개
국민 눈 피해 슬그머니 고쳐
일 내부서도 “개정철회” 촉구

NPT 가입·비핵 3원칙 견지
당장 핵무장 가능성은 낮아
일본 국회가 원자력기본법을 고쳐 원자력의 연구와 이용 목적에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을 두고 일본의 전문가들조차 핵무장 합법화의 길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중국 등 주변국들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자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 관방장관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적극적으로 진화에 나섰다. 그는 “일본은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원칙, 비핵 3원칙(핵무기는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에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이런 해명은 의심을 거두게 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개정법에 담긴 ‘안전보장’이란 용어가 핵의 평화적 이용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을 제안한 의원들은 20일 참의원에서 이 용어가 “핵물질의 부정한 전용이나 테러 등을 막는 보장조처를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은 “보장조처는 영어로 세이프가드(safeguard)로 번역되는 것으로, 시큐리티(security)로 번역되는 안전보장과는 다른 용어”라며 “(안전보장이란 용어는) 군사적 목적으로 (핵기술이)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했다.

법 개정이 일본 국민의 눈을 피해, 공론화도 없이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법안은 지난 15일 여야 합의로 슬그머니 제출돼 18일 중의원을 통과할 때까지 국회 누리집(홈페이지)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 뒤 이틀 만에 참의원까지 통과했다. 민주당이 소비세 증세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에 양보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자민당과 공명당이 교묘하게 활용한 모양새다. 1954년 연립여당에 참가한 개진당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의원이 여당(자유당)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 예산안 긴급수정 방식으로 원자력 예산을 처음으로 따냈던 상황과 비슷하다.

원자력기본법과 함께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법을 고친 점도 의심을 키운다. 일본은 오랫동안 우주개발을 비군사 분야에 국한해 왔다. 그러나 2008년 이 법을 제정하면서 기구의 활동 목적에 대해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일본 의회는 이번에 다시 ‘(기구의 활동은) 평화적 목적에 한한다’는 내용을 법에서 삭제해, 방위를 목적으로 활동할 길을 열었다. 원자력기본법도 이 법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일본의 저명한 지식인 모임인 ‘세계 평화호소 7인위원회’는 법 개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위원회는 19일 성명에서 “실질적인 군사 이용의 길을 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며 “국익을 해치고 화근을 남긴다”고 비판했다. 위원회는 일본인으로 첫 노벨상을 받은 이론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 등이 창설했으며, 당파를 초월해 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내왔다.

물론 일본이 당장 핵무장을 추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현재 일본은 핵발전을 두고도 국론이 갈라져 있는 상황인데 핵무기를 생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이 핵무장 합법화로 가는 첫 단추를 채운 것인데다, 자민당 등을 중심으로 한 일본 내부의 우경화 시도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원자력기본법 개정은 동북아시아 정세에도 상당히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일본을 핑계로 핵보유를 정당화하려 할 가능성이 있고, 중국도 대만의 핵무장 도미노를 우려해 일본의 시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할 것이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길윤형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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