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일본

일본 외무성, 한국 외교관 정문 출입 막아

등록 2012-08-23 19:03수정 2012-08-24 11:20

한-일 외교 확전 양상
노다, 국내여론 고려 ‘강경 선회’
이 대통령에 일왕 발언 사죄 요구
서한 반송 한국 외교관 출입막고
“매우 냉정함 잃은 행위” 비판도
23일 오후 일본 도쿄 가스미가세키 관청가에 있는 외무성 청사 정문 앞.

도쿄 주재 한국대사관 김기홍 참사관이 신분증을 제시하자, 일본 경비원들이 “사전 약속 없이는 못 들어간다”며 막아섰다.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 사이에는 찾아보기 힘든 ‘외교관 문전박대’였다. 김 참사관의 손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관련해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담은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다. ‘용납할 수 없는 부당한 내용을 담고 있어 반송하는 게 정당하다’는 우리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일본 외무성에 친서를 돌려주러 갔던 김 참사관은 결국 1시간 만인 오후 4시40분께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는 일본 우익단체가 차량에 확성기를 매달고 “위안부가 아니라 매춘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김 참사관은 이날 오전부터 오노 게이이치 일본 외무성 동북아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총리 서한 반송을 위한 면담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주일 대사관은 오노 과장이 면담을 거부하자, 외무성 문서수발 창구에 접수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마저 담당 부서가 거부해 김 참사관이 직접 외무성을 찾아갔다. 그렇게 한·일 두 나라 정부가 서로 서한을 받을 수 없다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수신자가 수령하기 어려운 내용의 서신을 받을 경우 반송하는 사례는 있지만, 서한을 보낸 쪽이 회수를 거부하는 것은 외교 관례를 떠나 상식에 어긋난 일”이라고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노다 총리의 서한을 등기우편으로 되돌려보내기로 했다. 등기우편은 24일 오전 중에 일본 외무성에 배달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총리 친서 반송을 거세게 비판했다.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은 이날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외교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다 총리는 한국 정부의 친서 반송을 “매우 냉정함을 잃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두 나라가 전례가 드문 감정싸움을 벌이는 모양새다.

노다 총리의 이날 발언과 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확전을 자제하며 갈등의 수위를 낮추려 하던 최근 며칠간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반송한 친서의 수령을 거부하기에 앞서 노다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4일 ‘일왕 사과’ 발언에 대해서도 ‘상식을 크게 벗어나 있다’며, 사과와 철회를 요구하는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일본에서는 그동안 거친 비판이 적지 않았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은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예의를 잃은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도 “상식을 벗어났다. 지극히 예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다 총리는 같은 날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고 유감스럽다”고 비교적 점잖게 비판하는 데 그쳤다. 그런 노다 총리가 한참이 지나 자신의 입으로 ‘사죄와 철회’를 요구한 것은 다소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노다 총리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9일이 지난 23일, 독도 문제 및 센카쿠열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위해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시모무라 하쿠분 자민당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일왕뿐 아니라, 일본 국가, 나아가 일본 국민에 대해서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었다’는 지적에도 동의를 표시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사실상 최악의 평가를 종합한 듯한 발언이었다.

노다 총리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에 매우 강경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홍콩 활동가들의 ‘센카쿠열도’ 상륙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질책을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었다. 노다 총리가 연말에 치러질 가능성이 큰 총선에서 한국과의 갈등을 활용하려 마음먹었다면,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의 귀임과 함께 큰 파고는 지나간 듯하던 한-일 갈등이 다시 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박병수 선임기자 je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