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의학상 야마나카 신야의 인생역전
수술시간 길어 ‘짐스런 동료’ 별명
사표 내고 미국서 줄기세포 연구
귀국 뒤 실험용 쥐만 돌보다 좌절
실의 딛고 ‘만능유도줄기세포’ 개발
당뇨병·파킨슨병 치료에 혁명 기대 “솔직히 제가 수상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야마나카 신야(50) 일본 교토대 교수는 만능유도줄기(iPS)세포 개발 공로로 올해 노벨의학상 공동수상자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8일 오후 집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를 내는 세탁기를 막 고치려던 참이었다. 만능유도줄기세포를 개발한 지 겨우 6년 만에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된 것에 대해 그 자신만큼이나 다른 일본인들도 놀라고 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수많은 좌절이 있었다. 그가 만들어낸 만능유도줄기세포는 보통의 세포에 유전자 4개를 결합시켜 세포 자체를 ‘초기화’한 것이다. 즉 배아줄기세포처럼 분화를 거쳐 신경이나 소화관 등 인체 어느 곳의 세포로도 바뀔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포다. 만능유도줄기세포의 개발은 당뇨병, 파킨슨병 등 난치병 치료나 재생의료에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야마나카가 의사가 되려고 마음먹은 것은 중학생 때부터 대학 2학년 때까지 계속한 유도가 발단이었다. 그는 ‘부상의 보고’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10차례 넘게 골절상을 입는 등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그래서 스포츠로 인한 외상을 치료하는 전문의가 되겠다며 고베대학 의학부를 지망했고, 졸업 뒤에는 국립오사카병원 정형외과 의사가 됐다. 하지만 그는 곧 인생의 쓴맛을 맛보게 된다. 그는 수술이 서툴러서, 남들이 30분이면 하는 수술을 하는 데 2시간이나 걸렸다. 이로 인해 ‘짐스러운 동료’(자마나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가 맨 처음 맡았던 환자는 만성 관절 류머티즘 환자였는데, 점점 증상이 악화돼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전신의 관절이 변형돼버린 것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가 너무 많았다. 그는 난치병 환자를 위해서는 많은 기초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병원을 그만뒀다. 그리고 1989년 오사카시립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약리학을 공부했다. 그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글래드스턴연구소에 유학해 쥐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했다. 1996년 일본으로 돌아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계속하려던 그는 또다시 좌절을 맛봤다.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미국과는 환경이 아주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의논할 상대도, 연구자금도 없이 실험용 쥐를 돌보는 게 일이었다”며 “반우울증 상태로 지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야마나카는 1999년 12월 마지막 도전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라첨단과학기술대학원대학 조교수 공모에 뽑혀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 있게 됐을 때, 그는 “연구자로서 한번 죽은 나에게 신이 한번 더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봄 그는 대학원생 120여명을 앞에 두고 “수정란을 쓰지 않고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만능세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2003년 과학기술진흥기구로부터 5년간 3억엔의 연구비를 따낸 것이 큰 힘이 됐다. 2004년 교토대로 옮긴 그는 2006년 쥐의 피부세포를 이용해 만능유도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성과였다. 이어 이듬해 사람의 피부세포를 이용해서도 만능세포를 만들어냈다. 만능세포 연구는 세계 각국에서 후속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같은 교토대학의 사이토 미치노리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암컷 쥐의 만능유도줄기세포로 난자를 만든 뒤, 이를 수컷 쥐에서 채취한 정자와 체외수정시켜 새끼 쥐를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 야마나카는 일본인으로는 두번째 노벨의학상 수상자가 됐다. 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본 정부와 국민, 동료연구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몇번이나 거듭했다. 야마나카는 근육이 뼈로 변해가는 난치병과 싸우고 있는 효고현의 중학생 야마모토 이쿠미(14)와 2009년부터 교류하면서 연구에 큰 자극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수상의 기쁨도 크지만, 큰 책임감도 함께 느끼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진정한 의미의 사회공헌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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