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100엔 시대’ 또 열리나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 내정자
“금융 완화” 국회서 소신 표명
엔화 나흘째 약세…96엔대로
미 고용지표 개선 등도 영향

일본 엔화의 약세 행진이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3년7개월 만에 달러당 95엔대로 하락(엔-달러 환율은 상승)한 엔화가치가 11일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96엔대로 한단계 또 떨어졌다. 일본 금융시장에선 머잖아 달러당 100엔대 시대가 다시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퍼지고 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4일째 약세를 보이며 정오께 달러당 96.2엔대까지 하락한 뒤 약간 하락 폭을 줄여 오후 3시께는 96.1엔대에 거래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적극적 통화완화를 주창해온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차기 일본은행 총재로 내정하며 가속화한 엔화 약세는, 구로다 내정자의 국회 소신표명을 거치며 탄력을 받고 있다. 구로다는 이날 참의원에서 소신표명 발언을 통해 “물가상승률 2%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구로다가 국회의 임명 동의를 받고 다음주 일은 총재로 취임하면, 공언한대로 추가 금융완화 조처를 시행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사며, 엔화표시 자산의 가치 하락을 방어하려고 엔화 선물을 매도하고 있는 것도 엔화 약세 요인으로 분석된다. 닛케이지수는 11일(종가 1만2349엔)까지 8일 연속 상승했다. 이 기간동안 상승폭은 1100엔(약 9%)에 이른다.

미국의 고용지표가 개선되고 주가가 오르는 것도 달러 강세-엔 약세로 연결되고 있다. 지난 8일 발표된 미국 고용통계는 비농업부문의 고용자가 23만6000명 늘어나고, 실업률은 7.7%로 예상보다 큰 폭으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양적완화 정책을 조기에 종료할 것이라는 기대가 퍼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노믹스에 의한 일본의 통화완화와 미국 경기회복에 따른 달러 매수 움직임이 겹쳐, 엔화 약세 흐름이 한층 견고해졌다. 달러당 100엔대를 예상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총선거 뒤 엔화는 한 때 강세를 보였으나, 앞으로 이탈리아 정국이 혼란스러워도 금융완화가 예상되는 일본의 엔화보다는 달러를 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본 분석가들 사이에선 만약 미국이 양적완화를 종료한다면, 엔화 약세-달러 강세가 매우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엔화 약세가 진행되면서 해외시장에서 일본 제품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수출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원-100엔 환율은 지난 6일 1153.38원에서 7일 1144.54원으로 1150원선을 하향돌파했고, 8일에는 1133.31원까지 내려갔다. 류용석 현대증권 연구원은 “엔-달러가 96엔을 넘어서면서 원-100엔 환율의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1150원이 붕괴됐다”며 “일본과 수출시장에서 가격적인 측면에서 경합 관계가 높은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기계, 화학업동 등에 대한 실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안선희 기자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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