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식 뒤집기 노골화
의원 168명 야스쿠니 참배
한국·중국과 갈등 불사 뜻
외교부 “강한 유감” 표명
의원 168명 야스쿠니 참배
한국·중국과 갈등 불사 뜻
외교부 “강한 유감” 표명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국가간 관계를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마루야마 가즈야 참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전날 회의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할 수는 없다”고 밝힌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의 표현 가운데 “모호한 점이 있다”고 대답하면서 ‘침략’이란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아베 총리 정부와 일본 자민당의 역사인식 뒤집기가 한층 노골화하고 있다. 아소 다로 부총리 등 일부 각료들의 참배에 이어, 이날은 ‘다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회장 오쓰지 히데히사 자민당 의원) 소속 의원 168명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의 제사를 지내는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이 초당파 의원모임의 집단 참배에는 지난해 봄 80명이 참가했는데, 이번에는 인원이 갑절 넘게 늘었다.
그 배경에는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하고, 우익 신생정당인 일본유신회가 의석을 크게 늘려 일본 정치권의 보수색이 매우 짙어진 상황이 있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 의지를 내비쳐온 것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번에 직접 참배는 하지 않았지만 봉물을 헌납해 가을 참배를 향해 한걸음 더 다가섰다. 일본유신회와 다함께당 소속 의원뿐 아니라, 민주당과 생활당 의원 일부도 참배에 합류했다.
의원모임의 오쓰지 회장은 참배 뒤 기자들에게 “국회의원이 나라를 위해 순직한 영령에 참배하는 것은 어느 나라도 하는 일”이라며 “(한국·중국이) 반발하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일본 지도부의 참배를 한국 등 주변국이 거세게 비판해왔음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이와 비슷한 발언을 아베 총리도 이미 몇차례나 했다.
아베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 수정 발언이나, 각료와 의원들의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서도 기존 태도를 정면으로 뒤집고 나올 가능성을 예고한다. 아베 정부는 28일 일본이 미국 점령체제에서 벗어난 날을 ‘주권 회복의 날’로 삼아 정부 주최의 행사를 열기로 했다. 미국 점령 체제 아래 만들어진 헌법의 뼈대인 9조를 고쳐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게 아베 총리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아베 총리 등 우익 정치세력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반성하고 이웃나라에 사과한 기존의 역사인식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지난 10일 “자랑스러운 일본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교과서 서술에서 주변국을 배려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정권 초기 한국과의 우호 관계를 한때 강조하기도 했던 아베 총리는 통화완화 정책으로 주가와 채권값이 급등하고 내각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벌이자, 우경화 행보에 자신감을 얻은 듯한 모습이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면,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는 더욱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한국 등 주변국과의 갈등도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외교부는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근본적으로 아베 내각의 역사 인식을 의심케 하는 발언으로 심히 우려되며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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