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제 연구·토론 단체 출범
1952년 미국령→1972년 일본 반환
‘유엔에 탈식민운동 지역 등록’ 목표
2007년 20%만 독립 찬성했지만
미군기지 이전 결렬뒤 목소리 커져
1952년 미국령→1972년 일본 반환
‘유엔에 탈식민운동 지역 등록’ 목표
2007년 20%만 독립 찬성했지만
미군기지 이전 결렬뒤 목소리 커져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가 들끓고 있다. 본토 정부의 오랜 차별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로 불리는 미군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시키려던 오랜 숙원은 사실상 물건너갔고, 오히려 미군은 잦은 사고 탓에 ‘과부 제조기’로 불리는 수직이착륙 수송기 오스프리를 그곳에 배치했다. 195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서 분할돼 미국의 점령통치 아래 들어간 날을 일본 정부는 ‘주권 회복의 날’(4월28일)로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현재 오키나와의 상황은 일본에 의한 류큐 차별이며, 식민지배다.”
15일 오키나와에서는 이런 내용의 설립 취지문을 내건 ‘류큐(오키나와의 옛 이름) 민족독립종합연구학회’라는 이름의 단체가 발족했다. “차라리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자”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날은 오키나와가 미군의 통치에서 벗어나 일본으로 반환된 지 41년째 되는 날이다.
이 단체는 오키나와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오키나와의 독립 문제를 연구·토론하고 국제기구에 오키나와의 독립을 호소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앞으로 매년 두차례 학술회의를 열어 세계 각국의 독립 경과와 사례를 연구·발표하는 등의 방식으로 주민을 설득하고, 유엔 탈식민화특별위원회에 류큐를 탈식민 운동이 진행중인 지역으로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옛 류큐왕국의 땅이던 오키나와는 1879년 일본에 복속됐다. 그 뒤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험난한 세월이 이어졌다. 2차대전 때는 미군과 치열한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고, 주민들은 일본군에 의해 집단 자결을 강요받기도 했다.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미국령이 됐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됐지만, 일본 내 미군기지의 70%가 여전히 오키나와에 있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지고 있다.
오키나와 독립론은 1979년 일본 복속 100년을 맞아 처음 일었으나 큰 호응은 없었다. 2007년 류큐대학이 실시한 현민 여론조사에서는 20%만이 독립을 지지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독립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오키나와가 지역구인 데루야 간토쿠 사민당 의원은 지난달 1일 자신의 블로그에 ‘오키나와, 드디어 야마토(일본 본토를 가리킴)에서 독립’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오키나와가 이렇게 차별을 받느니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게 낫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썼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놓고 일본과 갈등중인 중국이 최근 오키나와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고 나온 것은 오히려 독립론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8일 “오키나와 영유권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에 있다”며 “이 섬이 일본에 귀속돼 있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를 실었다. 관영 <환구시보>는 11일치 사설에서 “오키나와 독립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썼다. 일본 우익 대변지인 <산케이신문>은 15일 오키나와 독립운동 단체 설립에 대해 “중국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는 듯하다”고 비난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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