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약세 재시동…또 엔-달러 100엔대

양적 완화 축소 따라 달러 강세
조정 거친 뒤라 추세 계속 전망

엔-달러 환율이 다시 달러당 100엔대에 진입하는 등 한동안 숨고르기를 하던 엔화 약세가 재연되고 있다. 미국 달러의 강세가 그 배경인데, 원화보다는 엔화의 약세 폭이 더 커서 원-엔 환율(원화로 엔화를 살 때의 값)도 떨어지고 있다. 일본 업체와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 수출기업들의 어깨가 다시 무거워지고 있다.

2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전날의 달러당 99.66엔에서 1엔 가까이 오른 100.63으로 거래를 마쳤다. 미국의 5월 주택가격지수가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12.2% 상승하며 2006년 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고, 뉴욕 연방은행 총재가 미국 경기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발언을 하자, 미국의 양적완화 조기 축소 전망이 확산돼 달러가 주요통화에 견줘 강세를 보인 까닭이다. 3일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엔-달러 환율은 상승(엔화 가치는 하락)세가 이어져, 한때 달러당 100.8엔대까지 올랐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해 달러당 80엔 전후였으나, 과감한 통화완화를 뼈대로 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 정부의 경제정책)가 시행되자 지난 5월23일 103엔대까지 올랐다. 그 뒤 일본과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며 94엔대까지 되밀리기도 했으나, 6월20일 밴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발표한 뒤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엔화 약세는 미국 달러의 강세에 따른 것이어서 원화도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엔화의 약세폭이 더 커서 원-엔 환율도 하락세다. 원-엔 환율(100엔당 원)은 5월10일 1080원대까지 급락했다가 6월17일 1197원까지 되올랐으나, 최근 하락세가 가팔라지며 3일엔 1123원까지 떨어졌다. 연중 최저치인 5월10일의 1080원에 다시 근접해가고 있다.

일본 금융시장의 분석가들 사이에선 최근의 엔화 약세 국면을 ‘건전한 조정을 거친 제2의 엔 약세 물결’이라고 여기는 견해가 많다. 무엇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시기의 문제일 뿐, 이제 확정된 방향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신흥국들이 통화 약세 경쟁을 벌일 경우 수출 경쟁력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자본 유출의 위험이 커서 엔 약세를 용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아베노믹스의 성장 전략에 실망감을 갖고 일본의 재정적자를 우려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엔화를 팔 가능성이 큰 것도 엔화 약세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베노믹스 시행 뒤 한때 급등해 연 1%대까지 오른 일본의 장기국채(10년만기 국채) 금리는 연 0.8~0.9%대에 안착해가고 있다. 반면 미국의 국채 금리는 상승세여서 미-일 간 금리 차의 확대도 엔화에는 추가 약세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강 상태에 들어선 중국의 금융시장 불안이 재연될 경우, 안전자산으로서 엔화의 강점이 부각돼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여지도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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