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그나마 어렵사리
“사과와 반성의 마음” 표방…
2006년 아베가 포문 열더니
일 정객들 흡사 유행처럼
고노담화 뒤집기 발언
일 최대발행부수 ‘요미우리’
“재검토 불가결” 주장까지
“사과와 반성의 마음” 표방…
2006년 아베가 포문 열더니
일 정객들 흡사 유행처럼
고노담화 뒤집기 발언
일 최대발행부수 ‘요미우리’
“재검토 불가결” 주장까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일본군의 개입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사죄한 이른바 ‘고노담화’가 4일로 발표 20년을 맞은 가운데, 이 담화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수정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고 한발 물러선 상태지만, 아베 총리 등 일본 정치권의 상당수 인사가 사실상 이를 부정하고 있다.
미야자와 기이치(자민당) 내각 시절인 1993년 8월4일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이 담화는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만든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또 위안부 모집도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으며,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했다”고 밝히고 “(일본 정부는)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허다한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표명했다.
이 담화는 1990년부터 한국에서 진상규명 및 일본의 사죄·배상 요구 운동이 본격화하고, 국제사회의 압력도 거세지자 나온 것이다. 비록 일본 정부가 동원의 강제성을 모호하게 인정한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됐지만, 그 뒤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담화(1995년)의 초석이 되는 등 일본 역사인식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부하긴 했지만, 일본은 고노담화 발표 뒤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배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인식을 ‘자학사관’이라 비판하며, 위안부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보수우익의 공세에 선봉으로 나선 사람이 아베 신조 현 총리다. 제1차 아베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의 총리시절, 그는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한 증거는 없다”는 말로 고노담화 수정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미국 하원이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시인하고 사죄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지자, 아베 총리는 꼬리를 내렸다.
2012년 1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둬, 두번째로 총리직에 오른 아베는 못다푼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다시 이 문제에 집착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민당이 집권하면 고노담화와 무라야마담화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아베는 총리가 되자 “새로운 역사인식을 담은 아베 담화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에도 한국 등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자, 한걸음씩 물러났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 5월7일 ”(고노담화) 수정을 포함한 검토를 거론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이미 속내는 다 드러난 뒤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의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대해, 스가 관방장관은 지난 7월27일 “일본의 입장과 맞지 않은 것이다. 현지에서 미국 쪽 관계자에게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내 보수세력들 사이에도 위안부 동원 부정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은 지난 5월13일 “(전쟁 때) 위안부는 필요했다”고 망언을 쏟아냈다. 일본에서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보수지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1일치 사설에서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에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되기까지 고노담화가 논거를 제공했다”며 “‘성노예’라는 왜곡을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고노담화의 재검토가 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이영채 케이센여대 교수(정치학)는 “일본의 폭주를 막으려면 고노담화라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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