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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광기의 전범’들 신으로 모시며 ‘침략 역사’ 찬양·미화

등록 2013-09-05 20:19수정 2013-09-06 17:00

일본 야스쿠니신사 ‘유슈칸’을 가다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도조 히데키 등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일본 현직 총리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참배했다. 한국과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참배 이후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중단됐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는 자신이 제1차 내각의 총리로 재임(2006년 9월~2007년 9월)하는 동안 참배하지 못한 것은 “통한의 극치”라며, 이번 총리 재임 중에는 참배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밝히고 있다. 일본의 보수·극우 정치인들은 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집착하는가? 그들의 속내는 과연 무엇인가? 시민단체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동’에 참가하고 있는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의 안내로 야스쿠니신사의 핵심 중 하나이며 그 철학을 보여주는 역사자료관 ‘유슈칸’(遊就館)을 지난달 말 돌아봤다.

“죽어서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던
2차대전 참전군인들 제사 지내

“나라를 위한 거룩한 희생”
침략도 식민지해방 전쟁 왜곡

‘성스러운 전쟁’ 포장하려다보니
‘오점’될 위안부·대학살에도 눈감아

“일본의 야마토(大和) 정신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침 햇살에 빛나는 산벚꽃”

‘군인의 마음’이란 이름을 붙인 ‘제1전시실’에 들어서자 이런 문구를 쓴 족자가 내걸려 있다. 18세기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가 61살 때 그린 자화상에 써넣은 글이다. 1942년 일본문학보국회 등이 골라 <마이니치신문>에 실은 ‘애국 100인의 시 한 수’에 포함된 이 글은 ‘나라를 위해 벚꽃처럼 깨끗하게 지는 군인정신’을 묘사한 것으로 재창조된다.

유슈칸(遊就館)이란 건물 이름은 중국의 고전 <순자>에 나오는 “군자는 장소를 잘 택해 거처하고, 훌륭한 선비에게 배워야 한다(君子居必擇鄕遊必就士)”는 구절에서 따왔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 군인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기꺼이 죽었고, “죽어서 야스쿠니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유슈칸 앞 정원의 벚나무엔 옛 일본군 부대 이름을 적은 팻말이 간혹 걸려 있다.

모토오리의 글은 ‘적’의 함선을 향해 돌진하는 가미가제 특공대를 미화한 제13전시실의 그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유슈칸에서는 그렇게 강요된 희생이 모두 미화된다. 제15전시실 ‘야스쿠니의 신들’에 소개된 미담은 이렇다.

“소년 비행단 교관으로 정신교육을 맡은 후지이 중위는 특공 공격을 하러 출격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들만 죽게 하지는 않겠다. 언젠가 나도 꼭 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결의를 알고 있던 아내는 아이 둘을 데리고 비행학교 근처 강물에 스스로 빠져 죽었다. 후지이는 1945년 5월28일 부하가 조종하는 전투기에 타고 오키나와로 출격해 사망했다.”

폭탄을 잔뜩 싣고가 적의 함선에 부딪치는 인간어뢰,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하려고 바다 속에서 폭탄을 설치한 막대기를 손에 들고 있다가 적의 배가 지나갈 때 터뜨리는 16~17살 소년들로 조직된 특공대의 잠수복도 나라를 위한 거룩한 희생정신을 찬양하는 유슈칸의 전시물 가운데 하나다.

유슈칸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들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는 역사관으로 무장하고 있다. 마지막 전시실의 끝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이 그려진 지도에는 전후에 독립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 이름이 연도별로 분류돼 있다. ‘2차 대전의 결과’라는 제목 아래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일러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서구열강의 중압 아래 놓여 있던 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주었다.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이 실현된 것은 대동아전쟁 초반 일본군에 의해 식민지 권력이 타도된 이후였다. 일본군의 점령 아래서 한번 타오른 (독립의) 불꽃은 일본이 졌어도 꺼지지 않고 독립전쟁 등을 거쳐 민족국가를 속속 탄생시켰다. ”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 침략전쟁이 아니라 식민지 해방을 위한 전쟁이었다는 강변이다. 우치다 변호사는 “야스쿠니의 이데올로기로 보면, 2차 대전은 성전이었기 때문에 위안부 강제동원이나 난징대학살같은 불미스런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설명한다. 일본의 보수·우익이 두 사건을 그토록 왜곡하고 부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유슈칸의 역사 전시실을 지나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야스쿠니의 신들’의 방이 나온다. 이 방의 영어 설명엔 ‘전쟁영웅’(War Heroes)이라고 돼 있다. 합사된 이들 가운데는 일본 이름으로 표시된 한국인들도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유족들의 반대에도 이들을 계속 제사지내고 있다.

우치다 변호사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A급 전범이야말로 야스쿠니신사의 정신에 가장 어울린다. 전범을 분사하면 ‘성전’ 사상을 근간으로 한 야스쿠니의 역사인식이 무너져, 야스쿠니신사가 아니게 된다”고 말했다.

유슈칸 건물을 나서면, 마당 왼쪽 끝에 한 인물의 얼굴이 부조된 큰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2차 대전 전범 처벌을 위한 도쿄국제군사재판에 인도 대표 판사로 참가한 라다 비노드 팔을 기리는 비석이다.

“박사는 도쿄재판이 연합국이 무력해진 패전국 일본에 가한 야만적인 복수의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사실 오인으로 가득찬 연합국의 소추에 법적 근거가 전혀 없음을 논증해, 피고인 전원이 무죄라는 의견을 냈다.”

이 비석은 야스쿠니신사가 도조 히데키 등을 전범으로 규정한 도쿄재판의 정당성도 부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육군대장을 지내고 총리로서 일본을 전쟁의 광기로 끌고갔다가 사형을 당한 도조는 야스쿠니의 신이 돼 있다. 유슈칸은 그를 비롯한 도쿄재판의 A급 전범 피고 25명이 서명한 일장기를 자랑스레 전시하고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도쿄 야스쿠니신사의 역사자료관인 유슈칸의 제14전시실에서 지난달 말 관람객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일본 본토 공습을 방어하다 전사한 전투기 조종사들의 사진과 유품 등을 살펴보고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도쿄 야스쿠니신사의 역사자료관인 유슈칸의 제14전시실에서 지난달 말 관람객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일본 본토 공습을 방어하다 전사한 전투기 조종사들의 사진과 유품 등을 살펴보고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야스쿠니도 한때 A급 전범 분사했다

작은 사당서 따로 제사지낸듯
히로히토 일왕도 합사에 반대

야스쿠니신사 왼쪽 울타리에 난 쪽문을 지나 몇 계단을 내려가면 나무들 사이에 두개의 작은 사당이 숨은 듯 서 있다. 왼쪽 것이 진레이샤(鎭靈社)다. 이곳에서는 일본이 ‘천황’의 나라가 된 이후 사망한 군인들의 ‘혼령’을 제사지낸다. 야스쿠니신사와 대상이 같다. 다만, 야스쿠니신사가 제사하지 않는 혼령들을 제사지낸다는 차이가 있다. 1869년 야스쿠니신사의 원형인 쇼콘샤가 세워진 뒤 90년 가까이 지난 1965년에 야스쿠니신사는 왜 이 사당을 이곳에 따로 지었을까?

야스쿠니신사는 1978년 10월17일 A급 전범(14명)들을 합사하기 전, 이곳 진레이샤에서 제사지낸 것으로 여겨진다. 야스쿠니신사는 1965년 6월 A급 전범들의 합사를 결정했지만, 실행 시기는 궁사(신사의 최고 성직자)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이를 보면, 야스쿠니신사 쪽도 전범의 합사가 문제가 되리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야스쿠니신사 쪽은 A급 전범을 진레이샤에서 옮겼는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역사가 하타 이쿠히코는 “야스쿠니신사가 한때 A급 전범들을 진레이샤에서 제사지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모순에 빠진다. (모든 군인을 다 제사지낸다는 원칙 아래) 다른 곳에서 제사지내는 것을 거부하는 야스쿠니신사가 한때 A급 전범의 분사를 인정한 게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야스쿠니신사의 A급 전범 합사 사실은 합사 이듬해 4월19일 <아사히신문>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1975년 11월21일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것을 끝으로 히로히토 일왕(천황)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 현 아키히토 일왕도 마찬가지다. 히로히토 일왕 당시 왕실을 관리하는 궁내청 장관을 지낸 도미타 도모히코가 남긴 메모를 보면, 왕은 A급 전범의 야스쿠니 합사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것이 이후 참배를 하지 않은 이유라는 게 정설이다.

도쿄/ 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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