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 거리에서 혐한시위 등 우익들의 외국인 차별에 맞서는 시민단체들이 ‘도쿄 대행진’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한 참가자가 한글로 ‘친하게 지내요’ 등의 글귀를 쓴 팻말을 들고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극우 발호에 위기감 높아 참여 늘어
“눈물로 쟁취한 것, 무로 돌려선 안돼”
국제연대기구 ‘노리코에’ 25일 출범
인종차별 철폐운동 확대하기로
“눈물로 쟁취한 것, 무로 돌려선 안돼”
국제연대기구 ‘노리코에’ 25일 출범
인종차별 철폐운동 확대하기로
흰색 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은 100여 명이 선두에 섰다. 그들이 구호를 외쳤다.
“차별을 그만두자, 함께 살아가자.”
구호는 명령형이 아니라 권유형이었다. 그들 뒤에서 악단이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역사와 함께 해온 운동가 ‘우리 승리하리라’를 연주했다. ‘사이 좋게 지내요’ 혹은 ‘차별은 노(No)’라고 쓴 손팻말을 든 사람, 노란색, 흰색 풍선을 든 사람들이 악단 뒤를 따라 거리를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50년 전인 1963년 8월28일 미국 워싱턴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이 이끈, 인종차별 철폐 워싱턴 대행진의 모습이 22일 낮 도쿄에서 재현됐다. ‘인종차별 반대의 선두에 선 사람들’이란 단체가 주최해 ‘차별철폐 도쿄대행진’이란 이름으로 열린 이날 시위에는 1500여 명이 참가했다. 행진 참가자들은 이른바 인터넷 우익(네트 우익)들이 일요일이면 시위를 벌이곤 하던 신주쿠 신오쿠보 거리를 행진하며, ‘차별철폐’를 호소했다. 이날은 우익단체 회원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본 시민사회가 일본 안의 외국인 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본격적으로 뭉치고 있다. ‘한국인, 조선인 죽여라’ 등의 살벌한 구호를 외치며 혐한시위를 벌이는 ‘재일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재특회) 같은 인터넷 우익의 움직임을 이대로 좌시해선 안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도쿄의 외국인 차별 반대 시위는 2011년부터 ‘액션 9.23’이란 이름으로 시작돼 올해가 세번째인데, 올해는 참가자의 수가 크게 늘었다. 이날 행사에 합류한 ‘차별·배외주의에 반대하는 연락회’의 미키 유즈루는 “‘살아갈 권리에는 국경이 없다. 우리 동료한테 손대지 말라’라고 말해야 하기 때문에 행동에 나섰다”고 했다.
일본 시민사회는 혐오 구호(헤이트 스피치)와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국제연대기구의 일본 조직으로 ‘노리코에(‘넘어섬’, ‘극복’을 뜻하는 일본어) 네트’를 25일 출범시키기로 했다. 일본 정부 당국에 혐한시위의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낸 우쓰노미야 겐지 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 재일한국인의 참정권 실현운동에 참가한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 신숙옥(재일한국인 인권운동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각계인사 21명이 공동대표를 맡기로 했다. 이 단체는 앞으로 일본 국내의 인종차별 실태를 조사하고, 이에 맞서는 행동을 조직할 예정이다. 영상물과 방송 제작을 통해 반인종차별 교육도 전국에 확산시키기로 했다.
설립선언문에서 “사람들이 눈물로 쟁취해온 것을 무로 돌리려는 도전에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 단체는 일본에서 차별 철폐를 제도화하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글·사진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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