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각) 하와이 카일루아에서 마노아 폭포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 앉아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부터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에서 17일간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있다. 카일루아/AFP 연합뉴스
공식성명 내 수위높은 “실망” 표현
2006년 고이즈미때와는 다른 태도
한·중-일본 대립구도 원치 않아
일본에 태도변화 주문 나설 듯
2006년 고이즈미때와는 다른 태도
한·중-일본 대립구도 원치 않아
일본에 태도변화 주문 나설 듯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참배 때보다 훨씬 강경한 대응 자세를 보이고 있어, 그 함의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국무부는 26일 아베 총리의 참배 직후 주일 미국대사관을 통해 “일본 지도자가 이웃국가들과의 긴장을 악화시킬 행동을 취한 데 실망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낸 데 이어, 27일에는 대변인 명의로 같은 내용의 성명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미국이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공식 성명(statement) 형태로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용에서도 ‘유감’보다 수위가 높은 ‘실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은 2006년 8월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을 때는 불개입 태도를 분명히했다. 당시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관련 질문에 “일본 정치인과 총리가 결정한 문제”라며 “미국이 끼어들지 않을 일본 내부문제”라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2006년과 비교해 보면 이번 성명은 대단히 적극적인 의사 표명”이라고 평했다.
미국의 이런 태도 변화에는 아베 정권의 도발적 행동 때문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큰 틀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의 평화적 부상을 환영하되, 중국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설정해놓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일본을 핵심 조력자로 삼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초기에는 아베 정권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으나, 아베 정권이 이전 민주당 정부와 달리 안보·경제 협력 분야에서 미국에 적극 호응하자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해주는 등 적극적인 일본 껴안기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미국 내에서는 아베 정권이 동아시아에서 갈등을 초래해 미국에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 복원에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중국과도 갈등보다는 협력적 관계를 맺기를 원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중심으로 한·중과 일본이 대립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미국으로서는 원치 않는 구도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군사적 역할을 떠맡기를 원한다”면서도 “그러나 일본은 안정적 동맹국이 되기보다는 중국과의 다툼 때문에 미국 관리들에게 또다른 아시아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미국 행정부는 여러 채널을 통해 일본에 태도 변화를 주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비판이 이례적이고 직접적이었다면서, “미-일 관계가 훼손될 것이란 위협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아베 총리 측근들은 애초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미군기지 이전 등 여러 현안에서 일본의 협조를 원하고 있는 만큼 총리의 참배 강행이 미-일관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반응을 잘못 판단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대일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전망이다. 대규모 재정적자 문제를 안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당장 중국 견제를 위한 안보 분담과 티피피 같은 경제협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일본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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