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소비세 인상분 중기에 떠넘겨
소비자값 못 올리고 납품값 인하요구
소비자값 못 올리고 납품값 인하요구
4월1일 일본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일본 중소기업들이 ‘을’의 비애를 곱씹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31일 일본 대기업들이 소비세 인상에 따른 가격 인상을 회피하려고 비용 부담을 을의 지위에 있는 중소기업에 떠넘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원래는 5%에서 8%로 오르는 소비세율 인상분을 최종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 맞지만,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일본에서 최종 소비자 가격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타큐슈에서 중소 설비업체를 운영하는 한 사장은 “대기업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소비세가 올라도 납품 가격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회사가 납품 가격을 올리면 대기업에서는 중국과 한국의 중소기업으로 주문을 넘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채산이 맞지 않아도 공장을 놀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일상적으로 납품 가격 인하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은 소비세 인상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의 한 사장은 “올해도 예년처럼 대기업은 납품 가격 5% 인하를 요구할 텐데, 원전 가동 중지 등으로 전기료는 15% 오르고 엔화 강세로 원자재 가격도 오르는데 소비세까지 오르니 엄청난 타격”이라고 말했다. 일본 금융회사인 신금중앙금고가 이달 중소기업 1만4341곳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소비세 인상분 만큼 납품 가격에 ‘전부 반영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경우는 33.5%에 그쳤다.
일본 정부도 이른바 ‘지(G)맨’이라는 감시요원 600여명을 전국적으로 배치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소비세 인상분 떠넘기기를 하는지 감시에 나섰지만,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대기업이 교묘하게 소비세 인상분 떠넘기기를 일상적인 ‘비용 절감 요청’인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많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소비세 인상분을 떠넘겨도, 이를 정부에 신고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제적 타격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일본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한주 동안 9750억엔 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고 <블룸버그> 뉴스는 보도했다. 이런 외국인 증시 자금 이탈 규모는 1987년 일본 증시 대폭락 이후 최대치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소비세 인상으로 아베노믹스가 성공할 지 여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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