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가 새로운 합종연횡으로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진원지는 일본이다. 아베 신조 정부는 미국의 동북아 주도권이 흔들리는 틈을 타고 전후 질서를 해체하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집단적 자위권 용인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자위대의 길을 트고, 외교적으로는 반목을 거듭하던 북한과도 손을 잡았다.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대중 접근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이 벽에 부딪히자, 외교적 고립 탈피와 경제건설의 종잣돈 마련을 위해 일본에 다가서고 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한·미·일 안보협력 구도를 깨트리기 위해 한국에 강한 ‘구애 외교’를 펼치고 있다. 냉전 시대 이후에도 군사적 동맹과 경제블록 등으로 나뉘었던 북·중·러와 한·미·일이라는 동북아의 전통적인 대립구도는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3일 동시에 열린 한-중 정상회담과 북-일 합의 내용 발표는 새로운 판짜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동북아 국가들의 신경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열어 ‘한반도 비핵화 공조’와 ‘연내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추진’ 등의 내용을 담은 ‘한-중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두 나라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한반도에서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가 6자회담 참가국들의 공동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뒤 청와대는 “지난해 박 대통령의 방중 때 두 정상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심각한 위협’임을 강조한 데 이어 올해엔 ‘확고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는 이미 북한의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국내외적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도 이날 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저와 시 주석님은 양국 공동의 당면 과제인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달성해 나가는 데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했다. 우리 두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고 핵실험에 결연히 반대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의 모든 핵무기 포기를 요구한) 2005년 9·19 공동성명 및 유엔 안보리 결의들을 성실히 이행해야 하는 데 입장을 같이했다. 양측은 6자회담 수석대표 간 다양한 방식의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동성명은 두 나라 정상이 지난해 밝혔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조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북핵 문제와 6자회담 재개 등과 관련해 특별히 진전된 표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중국 쪽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기울인 한국 측 노력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다”며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했지만, 북한이 반발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통일구상’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지지 표현은 담지 않았다.
두 정상이 최근 일본의 과거사 도발 및 집단적 자위권 허용 방침 등의 우경화에 대해 어떤 언급을 내놓을지도 주목됐으나, 공동성명에는 이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두 정상의 세부적인 합의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 부속서에 “양측은 관련 연구기관 간 위안부 문제 관련 자료의 공동연구, 복사 및 상호 기증 등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두 정상은 외교장관 연례 교환 방문 정착 및 외교안보 고위전략대화 등 다양한 대화 채널을 강화하고, 2015년부터 해양경계획정 협상을 시작하는 데에 합의했다. 경제·사회 분야에서는 한-중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연내 타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을 개설해 양국 간 금융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또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감축과 원자력 안전, 구제역·조류독감 등 동물 역병 대처 등에 대한 협력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