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13일 현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뼈대로 하는) 안보법제의 결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자리에선 안보법제가 결국은 통과되는 것을 전제로 이를 둘러싼 반대행동의 의미와 이후의 정치과제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아베 정권이 (보통 6월 말에 끝나게 돼 있는) 정기국회 회기를 3개월 이상 연장했는데도 회기가 끝날 무렵까지 안보법제가 통과되지 않고 미뤄지고 있다. 이는 반대 여론이 애초 예상을 뛰어넘어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이번 안보법제 심의에서 드러난 정부의 엉터리 답변은 일본 의회정치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안보법제 반대 여론이 커졌다는 것은 일본 헌법 9조가 상징하는 전후적 가치에 대해 전쟁을 아는 세대는 물론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도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이어 헌법 개정을 추진할 생각일지도 모른다. 헌법 개정이 내년 참의원 선거의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 9조의 개정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헌법 그 자체가 정치 쟁점이 된다면, 국민의 반대는 현재의 안보법제에 대한 것보다 더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안보법제를 위해 체력을 소진하고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아베 정권이 내년에 헌법 개정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안보법제를 둘러싼 정치과정에서 자민당의 자기 수정 능력이 결여돼 있음이 분명해졌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무투표로 아베 총리의 당선이 확정됐는데, 입후보하려 했던 노다 세이코 의원(전 자민당 총무회장)을 주저앉히기 위해 총리관저에서 여러 압력을 가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자민당의 역사에서 당내 권력 투쟁은 그때그때의 민의를 받아들여 정책을 수정하는 전통을 만들어왔다. 1960년 (미-일 안전보장협정 개정에 반대한) 안보투쟁 때도 기시 노부스케 내각에 대항하는 당내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이후 노선 전환이 가능했었다.
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간사장은 아베 총리에게 안보법제로 국론이 분열됐으니 이후엔 국민을 통합하는 쪽으로 노선을 전환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권력자 한명이 그런 노선 전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 전환은 리더끼리의 권력투쟁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만, 이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중선거구제 시대의 전통일 뿐이다. 자민당의 장래를 생각할 때 지도자 교육, 정책 노선 연마 등 정권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당내 논쟁이 불가능한 체질로 변화했다는 것은 이 당의 생명력을 손상시키고 있다. 안보법제를 둘러싼 논의 중에 젊은 의원을 중심으로 언론을 위협하거나 오키나와를 멸시하는 등 야만적인 발언이 줄을 이었다. 이런 반지성주의적 체질도 중기적으로는 자민당의 통치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다. 자민당의 양식 있는 세력은 어디 있는 것일까.
다음으로 야당 쪽을 보자. 안보법제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이 법안의 문제점을 알게 돼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게 됐다. 그러나 내각 지지율의 저하가 정당 지지의 변화를 불러오진 못했다. 야당 특히 제1야당인 민주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낮다. 9월 <지지통신>의 조사에선 내각 지지율이 38.5%, 지지하지 않는 비율이 41.3%, 자민당 지지율은 23.3%, 민주당 지지율은 4.9%였다. 국민이 아베 정권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지만, 자민당 외의 선택지를 고르려 하진 않고 있다.
안보법제에 반대한 여론은 어디로 갈까.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뿔뿔이 흩어져 싸워 자민당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면 안보법제에 대한 반대투쟁의 의미도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야당이 아베 정치에 대항하는 기본이념을 공유해 통일해야 한다. 제2야당인 유신의당은 민주당과 연대를 하려는 그룹과 아베 정권과 가까운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그룹으로 분열하려 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야당 재편을 용이하게 한다.
헌법이념 옹호를 축으로 야당이 결속하는 것은 내년 참의원 선거, 특히 지방의 소선거구제에서 야당이 이기기 위해 불가결한 선택이다. 이후 일본 정치의 초점은 야당의 움직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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