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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노대통령 ‘3·1절 기념사’ 가르쳐 징계당한 마스다 교사

등록 2005-10-24 18:49수정 2005-10-24 18:49

“왜곡된 역사교육 비극 부른다” 마스다 교사
“왜곡된 역사교육 비극 부른다” 마스다 교사
“왜곡된 역사교육 비극 부른다”
마스다 미야코(55)는 32년 경력의 베테랑 여교사다. 도쿄 시내 야스쿠니 신사 근처의 구단중학교에 역사 교사로 재직 중이다. 그러나 그는 요즘 학교가 아니라 메구로에 있는 도쿄도 교직원연수센터로 출근한다. 지도주사의 감시 속에 벽을 향한 책상에 앉아 종일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그의 일과다. 그는 지난 8월 말 도 교육위원회로부터 계고와 함께 연수 처분을 받았다.

마스다 교사가 수업을 박탈당한 계기가 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이를 ‘국내용’이라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양심적 일본인들 사이에선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한 기념사의 참뜻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와 함께 연설문 전문이 메일을 통해 퍼져나갔다. 마스다 교사는 한-일의 과거사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기념사를 읽고 의견을 적도록 했다.

마스다 교사는 ‘지상토론’이라는 독특한 수업방법을 써왔다. 두세 달에 한번 씩 학생들이 배운 내용에 대해 글을 쓰게 하고, 이 글과 참고자료들을 모아 인쇄한 뒤 다시 나눠준다. 글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비교해볼 수 있게 한다는 뜻에서 지상토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3·1절 기념사와 간디, 원폭, 전쟁책임 등이 소재였다.

명예훼손·신용저하가 이유
88년 도쿄시장 저격사건에 반성
잇단 처벌에 “우리 승리하리라”

“일본인들도 납치문제 등으로 고통스러워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 이상으로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이좋은 양국 관계를 위해선 분명한 사죄가 필요합니다.” “솔직하게 사죄를 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정치가들입니다.” 지상토론에 나온 학생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이 인쇄물을 본 한 우익 성향 학부모가 도 교육위에 ‘신고’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교육위는 인쇄물에 실린 ‘노무현 대통령에 보내는 편지’라는 마스다 교사의 글을 트집 잡았다. 거기에는 일제가 주변국을 침략한 사실이 없다는 도의회 문교위원의 망언과 후소사판 역사교과서를 ‘역사위조’라고 비판한 대목이 들어 있다. 교육위는 이를 빌미로 마스다 교사가 이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교사의 신용을 떨어뜨렸다며 징계 처분을 내렸다.

마스다 교사는 “침략 부정을 잘못됐다고 지적한 게 어떻게 징계사유가 될 수 있느냐”며 “지상토론과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참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반박했다. 그가 지상토론을 시작한 것은 1988년께다. 당시 쇼와 일왕의 전쟁책임을 주장하던 나가사키 시장이 우익에게 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스다 교사는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이런 비극을 낳았다는 자기반성 끝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이 방법을 생각해냈다.

처음에는 학생들도 귀찮아했다. 두세 줄 쓰는 게 고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 스스로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궁금해 할 뿐 아니라 생각을 정리해내는 자신의 성장에 놀라워했다. 97년 그에게 배운 졸업생 대표는 졸업사에서 “마스다 교사의 지상토론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해 그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그는 이 졸업사를 복사해 최고의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


연수라는 이름의 처벌이 그에게 처음은 아니다. 지상토론 내용이 문제가 돼 이미 99년 9월부터 2년 반 동안 고통을 겪었다. 학교로 복귀한 지 3년 반 만에 다시 같은 처지에 놓인 것이다. 힘겨운 싸움을 그만두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즐겨 부르는 노래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베트남전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대학시절 배운 <우리 승리하리라>였다.

도쿄/글·사진 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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