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재일 한인 출판인 김승복 ‘쿠온’ 대표
일본 쿠온 출판사 김승복 대표.
2007년 출판사 만들어 45권 펴내
한국문학 시리즈도 14권 번역
첫권 ‘채식주의자’ 가장 많이 팔려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 북카페도
연 100회 이상 작가 토크쇼, 공연 지난 22일 책거리에서 만난 김 대표는 활달하고 자신감에 차 있으면서도 차분하고 또 노련해 보였다. 쿠온은 김 대표 1인 출판사다. 그렇지만 출판사 설립(2007년) 이후 쌓아온 실적은 대단하다. 지금도 하루 2~3권씩 문학작품을 읽어낸다는 김 대표의 안목과 실행능력이 토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쿠온이 기획·출간한 책은 지금까지 45권 정도다.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로 설립 당시 방향을 정한 쿠온은 최근 출간한 김연수의 <원더 보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 14권을 일본어로 번역 출간했다. “2010년 첫 책을 냈는데, 바로 한강의 <채식주의자>였다.” 얼마 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이 작품의 진가를 오래전에 알아본 것이다. 당시 양파 그림 하나 들어간 표지 디자인부터 일본에서 주목을 받았다. 최근 나온 4쇄판 표지에는 맨부커상 수상 사실이 새겨져 있었다. <채식주의자>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김 대표는 하지만 “아직 1만권도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소설 특히 2000년대 이후 출간된 작품에 대해 높은 평가를 했다. 그만큼 기대감도 컸다. “한국문학이어서가 아니라 작품 그 자체, 그 보편적인 가치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최근 한국 소설은 정말 재미있고 좋아졌다. 더 자유로워지고 더 깊어졌다.” 9월에는 한강의 또 다른 소설 <소년이 온다> 일본어판을 낸다.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엔 김중혁, 구효서, 신경림, 박성원, 김언수, 김애란, 은희경, 허형만, 김연수, 황인숙, 박민규, 정세랑 등의 작품이 들어가 있다. 김 대표는 이들 중엔 “일본에서 고정적인 독자층을 형성한 작가들도 있다. 좋은 작품을 쓴 작가들이 고맙다”고 했다. 10월 말에는 모두 20권으로 예정된 박경리의 <토지> 일본어판 1, 2권이 나온다. 연간 900여 종의 일본어 책들이 한국에 번역 출간되지만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는 한국어 책은 고작 20여 종이다. 이 중에서도 문학작품은 서너 종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김 대표는 머지않아 한국 작품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한다. 쿠온은 문학작품 외에 <조선의 여성> <게이타이(휴대폰)의 문화인류학> <신경림-다니카와 혣타로 시인 대담집> <한국·조선의 지를 읽다> 등 인문사회 분야 책들도 기획해 한·일 동시 출간도 하고 있다. 이런 활발한 활동에는 김 대표의 니혼대 후배들이 운영하는, 쿠온보다 덩치가 큰 자회사 ‘나나로크’라는 출판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대학원 졸업 뒤 광고회사에 들어가 쿠온의 물적 토대(자금력)를 구축한 김 대표는 2007년 회사 설립 뒤 몇년간 출판사 에이전트로 일하는 한편 나나로크를 자회사로 인수해 다양한 출판 실무 경험을 쌓았다. 최근 일본 사회에 김 대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는 1년 전에 개장한 15평 크기의 북카페 책거리의 기여가 적지 않은 듯하다. 한국어 문학 작품이나 아동서, 만화, 실용서 등 약 3000권과 한국어 학습서, 한국 관련 일본어책 약 500권을 갖춰놓고 판매하는 북카페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작가, 아티스트를 초대하는 토크쇼, 공연 등의 ‘책거리 라이브’와 독서회, 저자 사인회 등이 “연간 100회도 넘게” 열린다. 한국 서적 주문 대행 서비스, 외부인들의 이벤트 등을 위한 공간 대출 서비스도 한다. 커피와 한국 전통차, 한국 떡에 막걸리, 맥주 등도 판다. 방송 등 일본 미디어들도 관심을 가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고, 그들 중 대다수는 일본인”이라고 했다. “책거리는 ‘한국을 책으로 연결한다’는 키워드로, 다양한 정보 발신과 한일교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진보초의 일본 출판·서점인들도 책거리를 진보초 공식 가이드북에 넣기로 하는 등 쿠온의 등장과 그 활력을 반기는 분위기다. 김 대표는 “진보초라는 유서깊은 상권에 갓 들어온 외부 신입자로서, 그들의 믿음을 얻으려 열심히 노력해 왔다. 진보초의 인정을 받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쿠온은 지금의 미디어 선도형 한·일 간 문화교류가 더 깊은 보편적인 국제 문화 교류의 장으로 자라날 기운이 무르익었다고 보고, 이제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매개로 서로의 지와 문화를 교환하는 사업을 전개하려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국에 온다는 김 대표는 “한·일 양쪽 모두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며 여러 악재에도 한·일 관계는 이들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함께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진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도쿄/글·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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