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아키히토(오른쪽) 일왕과 나루히토 왕세자가 함께 걷고 있다.
올해 82살인 일왕이 8일 생전 퇴위 의사를 직접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천황이 일본 국민을 향해 하신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등을 통해 방영된 영상메시지에서 “이미 80살이 넘어서 차츰 신체가 쇠약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과 같이 전신전령(몸과 정신의 모든 것)을 갖고 상징으로서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생전 퇴위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혔다.
일왕은 국정에 관여할 수 없다는 현행 헌법 규정 때문에 직접적으로 ‘퇴위’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생전 퇴위 의사를 에둘러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왕실전범상 일왕의 왕위 양위는 인정되지 않아, 실제 퇴위가 이뤄지려면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일왕의 이날 영상메시지는 일본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일왕의 영상메시지 방송 뒤 “천황의 나이와 공무 부담 현상을 살펴볼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 확실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정부 내에서 아키히토 일왕에 한해서 생전 퇴위를 가능하게 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행 왕실전범을 개정해 생전 퇴위를 원칙적으로 허용할 경우, 일왕이 정치적 압력을 받아 타의로 퇴위당하거나 거꾸로 일왕이 자의적으로 퇴위하는 경우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교도통신>이 지난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에 대해서 85.7%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가 현실화되면 나루히토(56) 왕세자가 왕위를 잇는다. 에도시대 후기 고카쿠 일왕(1780~1817년 재위) 이후 200년만에 첫 생전 퇴위가 된다. 고대나 중세 일본에서 일왕이 생전에 퇴위해 상왕이 되고, 이어서 불교에 귀의해 법왕까지 되면서 권위를 높여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메이지유신(1868년) 뒤 일왕의 생전 퇴위는 없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전까지 일본에서 생전 퇴위의 대안으로 거론되던 공무 줄이기나 왕세자 섭정에 대해서도 영상메시지에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아키히토는 “고령화에 따른 대처 방안으로 국가행사나 상징으로서 행위를 끝없이 축소하는 것에 대해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왕세자가) 천황의 행위를 대행하는 섭정을 생각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본인이) 충분히 그 처지에서 요구되는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채 생애를 마치기 전까지 천황으로 계속 있는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히로히토 일왕의 장남으로 1933년 12월 태어난 아키히토 일왕은 11살에 일본의 패전을 겪은 뒤, 일본의 평화헌법을 소중히 여기는 평화주의자로서 성장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퇴위 의사를 밝히면서 여러차례 “헌법에 정해진 상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그가 현행 ‘일본국 헌법’(1946년 제정)에 대해 갖는 강한 애착 때문으로 보인다.
현 헌법 이전인 1889년 제정된 ‘대일본제국 헌법’(1889년) 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고 쓰여 있다. 반면, 전후 만들어진 일본국 헌법 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다.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고 되어 있다.
현행 일본 헌법이 일왕의 지위를 ‘상징’에 국한시킨 것은 일본이 전쟁의 참화로 빠져든 가장 큰 이유가 옛 헌법이 일왕에게 부여한 ‘절대적 지위’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옛 일본 헌법은 4조에 입헌군주국임을 명확히 했지만, 11조에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는 조항을 삽입해 군에 대한 명령권은 일왕만 갖는다고 했으며, 이 조항을 근거로 일본 군부는 정당정치를 붕괴시키고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또한 아키히토 일왕의 아버지인 히로히토 일왕 본인도 전쟁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많았으나 승전국인 미국은 일왕의 전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 의사 표명은 아베 정권이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평화헌법 개정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나왔다. 아베 총리가 개헌 논의의 베이스(기초)로 삼겠다는 2014년 4월 자민당의 헌법개정 초안에는 일왕의 지위를 ‘일본국 상징’에서 “일본국의 원수이며 일본국과 일본국민의 통합의 상징”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아키히토 일왕은 2013년 12월 “평화와 민주주의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으로 생각해 일본국 헌법을 만들어 여러 개혁을 시행해 오늘에 이르렀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를 재건하려고 여러 사람들이 쏟아부은 노력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해, 아베 총리를 은근히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 의사를 밝힌 데는 아베 정권에 대한 불만과 부담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중국 <환구시보>는 8일 “평화주의자인 천황이 아베 내각이 추진하고 있는 군사 확장·헌법 개정 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생전 퇴위에 의해 자신의 호헌 태도를 표명한 것 아니냐”는 일본 기자의 해석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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