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헌법 개정을 국회 중의원 헌법심사회에서 논의하자”고 말해 개헌 논의에 한 발 더 나아갔다. 도쿄/AFP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일 새해 국회 시정연설에서 ‘평화헌법’ 개정 추진 의지를 본격화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간의 국제약속”이라는 표현을 새롭게 거론했는데, 이는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론에 대한 경계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날 시정연설에서 올해 “(일본) 헌법 시행 70주년을 맞았다”며 “다음 70년을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국민들에게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중의원) 헌법심사회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심화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자민당을 포함한 개헌 찬성파가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개헌 발의선(각각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아베 총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개헌의 핵심은 교전권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 개정에 있다. 아베가 속한 집권 자민당이 마련한 2012년 헌법 개정 초안을 보면, 현행 헌법상 일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돼 있는 일왕을 국가의 ‘원수’(1조)로 재정의하고, 자위대를 정식 군대인 ‘국방군’(9조)으로 삼고 있다. 이는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부인한 평화헌법 핵심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개헌이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면, 일본은 지금과 달리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2012년 초안을 아베와 자민당이 그대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야당인 민진당뿐 아니라 자민당 안에서도 반발이 있고, 무엇보다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시각이 큰 부담이다.
이 때문에 아베와 자민당은 ‘2단계 개헌’ 방식을 취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핵심인 9조 개정은 뒤로 미루고, 일단 긴급사태 조항 등 여야 간 이견이 적은 항목만 개헌한 뒤, 나중에 분위기를 더 띄워 ‘9조’를 개정한다는 것이다. ‘9조 개정’에 대한 아베의 의지가 그만큼 강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한국에 대해 “지금까지의 양국 간 국제 약속, 상호 신뢰를 쌓아 미래지향적이고 새로운 시대의 협력관계를 심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양국간 국제 약속”을 거론한 것은 한국에서 일고 있는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논의를 차단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에 이어 국회 외교 연설을 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극히 유감”이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한 합의는 쌍방이 책임을 지고 이행해나간다는 것을 한국 쪽에 계속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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