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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태어난 날 하늘로 간 ‘오키나와 현대사 산증인’

등록 2017-06-13 16:33수정 2017-06-13 21:00

오타 마사히데 전 지사 별세
미군기지 토지 강제수용 대리서명 거부
지사 퇴직 뒤에도 평화 운동 전력
오타 마사히데 전 오키나와 지사. <한겨레> 자료사진
오타 마사히데 전 오키나와 지사. <한겨레> 자료사진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와 평화 운동의 중심인물들 중 한명인 오타 마사히데 전 지사가 12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타 전 지사는 생일인 이날 나하시 병원에서 가족과 지인들한테 생일 축하 노래를 들은 뒤 눈을 감았다고 <아사히신문> 등이 전했다. 향년 92.

오타는 오키나와 지사이던 1995년 미군이 오키나와 주민 토지를 강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땅주인 대신 지사가 대리서명을 하는 것을 거부한 일로 유명하다. 이는 근대 일본 성립 뒤 국가와 오키나와가 정면으로 충돌한 첫 사건이었다. 대리서명 거부 전 미군이 오키나와 초등학생을 납치해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져 섬 전체가 분노로 들끓던 때였다. 결국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총리가 대리서명을 해 미군이 토지를 강제수용했지만, 이 여파로 미국과 일본 정부는 도시 한복판에 위치해 매우 위험한 기지로 원성이 높았던 후텐마기지의 이전에 합의했다. 오키나와 평화운동의 원로인 아라사키 모리테루는 <오키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에서 오타의 대리서명 거부 사건 과정이 오키나와 민중에게 많은 교훈과 자신감을 줬다고 평가했다.

오타는 오키나와 현대사의 산증인이었다. 그의 반전·평화 운동의 원점은 학생 시절 경험한 오키나와 전투였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오키나와에서는 미군과 일본군, 주민 등 최소 20만명이 숨졌다. 1945년 3월 오키나와사범학교 학생이었던 오타는 ‘철혈근황대’로 동원돼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었다. 철혈근황대는 일본군 대본영의 발표를 각지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는데, 동기생 125명 중 살아남은 이는 오타를 포함해 37명이었다. 미국 유학 뒤 류큐대 교수로 있던 그는 1990년 공산당과 사회당의 추천을 받는 혁신계 지사 후보로 입후보해서 자민당 후보를 꺾었다. 일본에서 선거운동이나 당선 때 흔히 외치는 ‘반자이’(만세) 구호를 “전쟁을 생각나게 한다”며 거부할 만큼 전쟁 경험은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열쇳말이었다. 오타는 지사 재직 당시 이토만시에 평화기념공원을 만들고 이곳에 전쟁으로 희생된 20만명의 이름을 국적을 가리지 않고 새겨넣은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사망한 조선인들 이름도 있다.

오타는 1998년 지사 선거에서 패한 뒤에는 자비로 평화연구소를 세워 운영하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등 일본 정부의 우경화에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2014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도 “일본은 지금 헌법을 바꿔 다시 전쟁하는 나라가 되려 하고 있다. 젊은 시절, 일본군은 나에게 수류탄 두개를 주며 죽을 것 같으면 하나는 적에게 던지고 하나는 자살하라고 했다. 군은 민간인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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