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온 가고이케 야스노리(왼쪽)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도쿄/신화 연합뉴스
21일 저녁 8시께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 아키에가 경영하는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이자카야(일본식 술집)에 한 남성이 찾아갔다. 남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간 뒤 안에서 “그만두지 못해”, “뭐하는 거야” 같은 고함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남성은 가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 둘러싸여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남성은 아베 총리 쪽이 초등학교 설립을 위한 부지 마련에 편의를 봐줬다는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의 주인공인 가고이케 야스노리 전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이었다. 가고이케는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에게 받은 기부금 100만엔(약 1030만원)을 돌려주려고 왔으나, 가게에서는 돈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고이케는 지난 3월 스캔들이 터지고 아베 총리와 사이가 벌어진 뒤 국회에 증인으로 나와 아키에가 아베 총리 이름으로 학교에 기부금 100만엔을 줬다고 폭로했다. 아베 총리는 전면 부인했다.
가고이케는 이날 밤 9시에는 도쿄 시부야에 있는 아베 총리 자택에도 찾아갔다.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돈 봉투를 꺼내보였으나, 아베 총리 쪽에 돈을 돌려주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가고이케는 “내가 (기부금을) 집에서 받았으니까 집에서 돌려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가고이케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아베 총리에 대한 분노 때문으로 보인다. 가고이케는 아베 총리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승승장구했으나, 스캔들이 터진 뒤 아베 총리는 자신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며 선 긋기에 나섰다. 모리토모학원은 유치원 아이들에게 군국주의 교육의 상징인 ‘교육칙어’를 암송하게 하고 한국인과 중국인 부모들에게 “한국과 중국이 싫어요”라고 적힌 가정통신문을 보낼 만큼 극우적 교육으로 유명했다. 어떻게 보면 아베 총리가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 교육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 가고이케다. 하지만 최근 오사카 검찰이 가고이케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수사에 나서면서 궁지에 몰려있다. 오사카 검찰은 모리토모학원이 교사들 급여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정부 보조금을 부정 수급한 혐의가 있다고 수사하고 있으며, 수사 결과가 아베 총리 쪽까지 번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아베 1강 시대’라 불릴 만큼 탄탄한 정권을 구축했던 아베 총리는 모리토모 스캔들뿐만 아니라 가케학원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역풍을 맞고 있다. 가케학원 스캔들은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가케학원이 수의학부를 신설하는 데 총리 관저가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다.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이 “총리의 의향”이라고 적힌 문부과학성 문서까지 폭로됐다. 50%를 넘던 아베 총리 지지율은 최근 40%대로 떨어졌다.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에 대한 수사 결과가 가고이케에서 그치면 아베 총리는 한숨 돌릴 수 있겠지만 그 이상 확대되면 아베 정부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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