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살 일본 여성 하라구치 아야코가 38년 투쟁 끝에 법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화를 통해 듣고 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영상 갈무리
“아리가토.”
하라구치 아야코(90)는 목소리를 쥐어짜듯이 겨우 “고맙다”고 말했다. 살인죄로 경찰에 체포된 뒤 38년 동안 법정 투쟁을 한 끝에 재심 개시 결정이 나왔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 고령으로 걸을 수가 없는 그는 재판정에 가지 못했고, 변호인들이 호텔에 대기하던 그에게 전화로 결과를 알려줬다.
일본 가고시마지방재판소는 28일 시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10년을 복역한 하라구치의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사건은 1979년 가고시마현 시골 마을 오사키마치의 농가에서 중년 남성의 주검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주검은 하라구치의 시동생으로 당시 42살이었다. 검찰은 하라구치가 수건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고, 남편과 다른 시동생이 가담해 사체를 외양간에 유기했다며 기소했다. 주요 증거는 하라구치와 공모했다는 남편의 자백이었다. 그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980년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경찰이 강압적 수사로 하라구치의 남편 등에게 자백을 유도한 의혹이 제기됐고, 남편이 가벼운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하라구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1990년 출소한 뒤 남편과 이혼하고 재심을 청구했다. 시민들도 그를 응원했다.
재심 청구는 이번이 세번째다. 2002년 지방재판소가 재심 개시를 결정했으나 검찰이 항고하자 고등재판소가 재심을 기각했다. 당시 이미 77살이었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3년 두번째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당했다. 세번째인 이번 청구에서 재심 개시 결정이 나온 데는 그의 의지와 함께 변호인단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변호인단은 1979년 사건 당시 수사당국이 찍은 사진의 필름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2015년 공개된 필름 1700여장을 현상해 법의학자에 보내 분석한 결과, 주검에서 질식사로 보기 어려운 점을 발견했다. 목이 졸려서 숨진 경우에는 주검 일부에 혈액이 몰려 변색이 발생하는 게 일반적인데 사체에 변색 흔적이 없었다.
죽기 전에 무죄를 증명하고 싶다는 그의 소원이 실현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검찰이 다시 항고하면 실제로 재심이 개시되기까지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변호인단은 검찰에 항고를 포기할 것을 요청했으나, 검찰은 항고 여부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전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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