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정치적 위기에 휩싸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일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포스트 아베’가 될 것인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2일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자신이 이끄는 도민퍼스트회가 압승을 거둔 뒤 박수를 치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2일 일본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고이케 지지파가 127석 중 79석을 휩쓰는 압승을 거두면서 고이케 지사가 중앙 정치에 진출해 권력을 거머쥘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베 1강’이라 불릴 만큼 독주해온 아베 신조 총리는 자민당이 역대 최악인 23석에 그치면서 권력 누수가 현실화되고 있다.
고이케 지사는 압승한 다음날인 3일 자신이 이끄는 지역 정당 ‘도민퍼스트회’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도지사 업무에 전념하고 싶다”며 중앙 정치와 거리를 두는 듯한 행보이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다. 대표직을 내려놓은 데는 도의회에 도지사에 대한 ‘예스맨’들이 넘쳐나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을 미리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고이케 지사는 자민당 의원 시절인 2008년 당 총재 선거에 출마해 총리 자리를 노린 적이 있다.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이시바 시게루 의원을 지원했다. <아사히신문>은 익명을 요구한 자민당 각료 출신 정치인이 “고이케는 이시바 다음은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고이케 지사가 총리 자리에 도전하는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부 지사가
오사카유신의회라는 지역 정당을 발판으로 일본유신의회라는 중앙 정당을 만든 모델이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민진당, 일본유신의회의 당적을 버리고 고이케 지사를 지원한 국회의원이 3명이다. 국회의원 2명을 더 모으면 선거법상 정당 설립 요건인 5명을 충족한다. 다만 하시모토 전 지사가 오사카유신의회를 만들 때 지방 분권이라는 의제를 던지면서 시작한 데 비해, 고이케 지사가 실질적으로 이끄는 도민퍼스트회가 중앙 정당으로 탈바꿈하며 내세울 명분이 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시나리오는 자민당과의 연대다. 아베 총리의 대항마로 떠오르긴 했지만, 고이케 지사는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다. 발언 자체만 보자면 아베 총리보다 더 극우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2003년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일본의 핵무장에 대한 질문에 “국제 정세에 따라 검토할 일”이라며 필요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혐한 단체인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에서 강연한 적도 있으며, 아베 총리의 개헌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우익 단체 ‘일본회의’의 회원이다. 이런 성향으로 볼 때 자민당과 연대하거나 자민당에 재입당할 가능성도 있다. 그는 도쿄도의회 선거전이 본격화된 지난달에야 탈당계를 냈고, 자민당 본부는 선거 다음날인 3일에야 이를 수리했다.
아베 총리는 참패로 지도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내년 9월 총재 선거에서 3선을 해 2021년까지 집권하는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되고, 재직 중에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목표를 밀어붙여 왔다. 하지만 이번 도의회 선거에서 각각 1965·2009년 기록한 최저 의석인 38석보다도 15석이나 적은 23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하면서 당내에 잠재한 불만과 이견이 터져나올 모양새다. 일본 언론들은 당연시되던 내년 총재 3선도 이제 불확실해졌다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는 3일 “선거 결과는 자민당에 대한 질책이다. 깊이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지도력에 금이 간 아베 총리가 한반도 정책에서 변화를 꾀할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방향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는 “도쿄도의회 선거는 지방선거이지만 중앙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다”며 “타격을 받은 아베가 북-일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취할 가능성도 지금으로선 모두 존재한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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