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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 시민들 전문가들과 치열한 공방 뒤 ‘반전 있는 결론’

등록 2017-08-06 15:04수정 2017-08-14 16:48

한겨레·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공동기획
공론화, 성공의 로드맵을 짜자 ②여론을 민의로…일본 공론조사

6개월 충분한 준비과정 거쳐
참여자 선발, 1박2일 토론·학습
예상 뒤엎은 마지막 전체회의
예리한 질문에 전문가 당황하기도
토론 사전-사후 여론조사 큰 차이

각의 결정에까지 반영됐지만
아베 집권하며 정책반영 불발
2012년 일본 수도 도쿄에서 열린  '에너지·환경의 선택지에 대한 토론형 여론조사(공론조사)’에서 전문가들이 시민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소네 야스노리 게이오대 교수 제공
2012년 일본 수도 도쿄에서 열린 '에너지·환경의 선택지에 대한 토론형 여론조사(공론조사)’에서 전문가들이 시민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소네 야스노리 게이오대 교수 제공
“원전의 안정성을 어디까지 담보할 수 있나?” “원전 비용이 (폐로 비용까지 포함해서) 제대로 계산이 되고 있는 건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사고가 벌어진 이듬해인 2012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에너지·환경의 선택지에 대한 토론형 여론조사(공론조사)’의 전체회의에서 시민들은 전문가를 당황케 하는 질문을 잇따라 던졌다.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질문에 전문가들은 ‘심층 방호’(설계를 안전하게 했어도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 같은 전문 용어를 사용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이 되지 못했다. 핵발전에 대해 잘 모르는 시민들이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나면 핵발전의 필요성에 대해 알게 될 것이라는 일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토론을 끝낸 시민들 사이에서 ‘원전 제로’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히려 높아지는 반전이 벌어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뒤 노다 요시히코 당시 총리가 이끌던 일본 정부는 근본적인 에너지 정책의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고민 끝에 국민을 상대로 다양한 여론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기존 방식으로는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고 느낀 일본 정부는 제임스 피쉬킨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가 1988년 고안한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일본에서는 ‘토론형 여론조사’라고 번역)’를 진행했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진행한 첫 공론조사였다.

반 년 가까이 준비기간을 거친 공론조사는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됐다. 전문가가 모인 공론조사 실행위원회는 “전화 여론조사와 토론 참가자 여론조사, 그리고 토론 뒤 여론조사를 나눠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실행위원회가 미리 제시한 핵발전 운영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의 찬성도를 물었다. 실행위원회는 후쿠시마 사고 직전인 2010년 기준으로 전체 전력발전량 가운데 28.6%를 차지하던 핵발전의 비중을 2030년까지 0%, 15%, 20~25%로 줄이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당시 일본 전역에 있는 20살 이상 남녀를 무작위로 추출해 진행한 전화 여론조사에 모두 6849명이 응답했다. 실행위원회는 여론조사 과정에서 “도쿄에서 실시하는 1박2일 토론에 참가하겠느냐”는 의향을 물었다. 참가를 약속한 285명은 미리 건네받은 전력 정책과 관련한 자료를 받은 뒤, 다시 같은 내용의 여론조사에 응했다.

일본의 공론조사 방식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지난달 27일 공개한 공론조사 계획과 비슷하다. 당시 공론화위는 “공론화위는 2만명 안팎의 표본을 대상으로 1차 여론조사를 벌인 뒤 응답자 가운데 공론조사에 참여할 350여명을 추려 핵발전소 건설 여부에 대한 의견을 확인해 한달 동안 핵발전소 관련 심층 학습과 토의 등 숙의과정을 거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과정을 끝낸 뒤 2차 여론조사를 해 시민들이 얼마나 의견에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게 주된 목적이다.

일본 시민의 ‘예리한 시각’이 두드러진 것은 ‘토론 과정’이었다. 전화 여론조사로 선발한 토론 참가자들은 2012년 8월4일 도쿄에서 모여 2차 여론조사를 했다. 그 뒤 ‘모더레이터’라고 불리는 진행자의 도움을 받아 1박2일 동안 소그룹 토론을 했다. 성별·연령을 고려해 나눈 소그룹에서는 전문가가 참석하는 전체 회의에서 할 질문을 정했다. “(값싸다고 알려진) 비용만을 보고 목숨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라는 의견과 “목숨도 중요하지만 오늘 내가 살아갈 (경제적인 면)도 중요하기 때문에 고민이 된다” 등 치열한 고민이 오고갔다. 당시 다수의 일본 언론은 “일본인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아 토론형 여론조사가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지만, 실상은 달랐던 것이다.

2012년 일본 수도 도쿄에서 열린  '에너지·환경의 선택지에 대한 토론형 여론조사(공론조사)’에서 시민들이 소그룹으로 나뉘어 토론하고 있다. 소네 야스노리 게이오대 교수 제공
2012년 일본 수도 도쿄에서 열린 '에너지·환경의 선택지에 대한 토론형 여론조사(공론조사)’에서 시민들이 소그룹으로 나뉘어 토론하고 있다. 소네 야스노리 게이오대 교수 제공
1박2일 일정의 마지막날인 전체회의에서 극적인 결말이 펼쳐졌다. 전체회의에는 시민들과 찬핵·탈핵의 입장에 선 전문가가 모두 참석했다. 전문가를 향한 시민들의 질문이 오고간 뒤, 최종 여론조사를 했다. 세 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찬성도를 강한 반대(0점)와 중립(5점), 강한 찬성(10점)으로 나눠 답했는데, 핵발전 비중을 0%로 낮추는 시나리오에 대한 찬성도의 평균치는 점점 높아졌다. 반면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였던 ‘20~25% 시나리오’는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국내 전문가들은 일본의 공론조사를 이른바 ‘모범사례’로 평가한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상무는 “진행 과정에 대한 사전 조율이 잘 됐던 공론조사”라며 “공론화 진행을 맡은 산하 위원회가 공정성과 팩트체크 작업을 잘 했으며, 6개월이라는 충분한 준비 기간, 그리고 정책에 잘 반영하려고 했던 정부의 의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공론조사를 통해 채택한 ‘원전 제로’ 여론이 결국 정책 집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노다 내각은 2012년 9월 공론조사 결과를 각의결정(우리나라의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반영해 “2030년까지 탈원전을 완료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찬핵 진영에서는 “지지율만으로 국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할 수 없다”며 반발했고, 그런 가운데 그해 12월 아베 신조의 자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면서 탈원전 정책은 폐기됐다. 하동현 안양대 교수(행정학)는 “정책 집행 여부를 떠나 공론조사 결과가 각의결정에까지 반영된 것 자체가 정책결정을 위한 하나의 통로로 인정됐다는 것이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원전의 공사 중단이 아닌 에너지 정책이라는 거시적인 주제라는 점과 공론화 준비기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공론화 상황과는 다른 면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김성환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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