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언 도쿄 특파원
현장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16일 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교토 영빈관에서 ‘세그웨이’라는 전동 스쿠터를 타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맞이했다.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이 스쿠터를 선물로 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생일선물로 드린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가족에 준하는 대접을 받아 기쁘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부시 대통령은 “총리를 가족과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상대방을 가족에 빗대 가며 친근감을 한껏 드러낸 이런 광경은 정상 외교에선 극히 보기 어렵다. 정상 간의 개인적 신뢰는 매우 중요한 외교 자산이다. 미-일 관계가 외교의 근간인 일본으로선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렇지만 일본 안에서도 우려가 만만치 않다. 대미 관계에 ‘올인’하려는 고이즈미 총리의 ‘뒤틀린’ 인식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의 관계가 좋을수록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대표적이다. <아사히신문>이 17일 사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하고만 잘되면 모두 괜찮다는 말은 “사고정지”에 가깝다.
이 말은 명백히 아시아 외교 중시를 촉구해온 국내 비판세력과 주변국을 겨냥한 것이다. 자신의 궤도수정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극우 인사들을 전진 배치한 지난달 말 개각 또한 주변국 무시의 전형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기 평검사들과의 대화 도중 격앙해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태도에서 막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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