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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추도문 거부 속 열린 간토대지진 추도식 “망각은 다시 악몽 부른다”

등록 2017-09-01 17:10수정 2017-09-01 22:23

고이케 지사 추도문 송부 거부 속 열려
반대편에서는 반대 집회 “일본인 명예 지키자”
1일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식에서 시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1일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식에서 시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일본 사회에서 간토(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실은 세월에 풍화되어 잊혀가고 있다.”

1일 94주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만난 추도식 실행위원장 미야카와 야스히코는 씁쓸하게 말했다.

올해 추도식은 예년보다 더욱 우울한 분위기에서 열렸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쪽은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이제부터 따로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00년대 이후 모든 도쿄도지사가 해마다 보낸 추도문을 올해 보내지 않았다.

미야카와 위원장은 “(보수적으로 유명했던)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도 학살을 부정할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추도문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고이케 지사는 추도문조차 보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는 추도식에서 “자연재해로 숨진 사람(일본인)과 사람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경우는 성질이 전혀 다르다. 분노를 느낀다”며 “망각은 다시 악몽을 부를 위험이 있다”고도 말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 사무국장인 다나카 마사타카는 추도식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그리고 (노동운동가 등의) 일본인도 죽임을 당했다”며 “우리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일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식에서 전통 무용가인 김순자씨가 희생자를 추도하는 춤을 추고 있다.
1일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식에서 전통 무용가인 김순자씨가 희생자를 추도하는 춤을 추고 있다.
변화된 일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장면은 추도식장 코앞에서도 보였다. 일본인 20명 남짓이 모여 조선인 추도식이 열리는 때와 같은 시각에 바로 옆 장소에서 일본인 지진 피해자 위령식을 열었다. 이들은 ‘조선인 6000명 학살 사실인가?’ ‘일본인의 명예를 지키자’ 같은 대형 펼침막을 일장기와 함께 내걸었다. 이들은 “조선인 6000명 이상이 학살당했다는 것은 거짓이다. 희생자는 20분의 1쯤 되지 않을까”라며 “반대로 일본인이 당한 경우도 있지 않을까”라는 주장까지 펼쳤다. 이전에도 역 앞에서 추도식 반대 팸플릿을 나눠준 이들은 있었지만, 추도식장 코앞에서 반대 행사가 열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시민단체인 일조친선협회 회원 시마오카 마리는 “일본 사회 우경화가 심해지면서 우파들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건너편 반대 집회가 그 예”라고 말했다. 조선총련 도쿄본부 부위원장 홍정수씨는 “예전에도 과거를 부정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너무 노골적”이라고 말했다.

일본 보수파들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살해당한 사실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한다. 간토대지진 뒤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고, 군경과 자경단이 조선인 6000명 이상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내각부가 작성한 보고서에도 죽임을 당한 경우가 있다고 적혀 있다. 이들은 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가 정확한 통계를 산출하지 않은 점을 악용한다. 내각부 보고서에는 죽임을 당한 조선인과 중국인의 수에 대해서 “살상 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10만5000명의 1~수%”라고 적었다. 지난 3월 고가 도시아키 도쿄도의원은 “희생자 수 6000명은 근거가 없다”는 질의로 추도문 송부 거부를 요청했고, 고이케 지사는 이에 응하는 방식으로 조선인 학살 은폐에 힘을 싣고 있다. 이는 조선인 학살 추도비 철거 요구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조선인 학살 사실 전체 부정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마저 있다.

1일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식에서 시민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1일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식에서 시민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이날 추도식에는 지난해보다 1.5배가량 많은 500여명이 참가했다. 낮 12시부터 시작된 헌화 행렬은 40분 이상 이어졌다. 고이케 지사의 추도문 송부 거부가 크게 보도됐기 때문에, 역으로 관심이 높아져 벌어진 씁쓸한 현상이었다.

이날 같은 장소인 요코아미초공원에서는 간토대지진과 도쿄공습 희생자를 위령하는 행사가 후미히토 왕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고이케 지사는 이 행사에는 추도문을 보냈으나 조선인 학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도쿄/글·사진 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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