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강제연행 문제를 파헤친 기록적인 저작물로 유명한 르포 작가 하야시 에이다이가 폐암으로 1일 별세했다고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향년 84.
하야시는 후쿠오카 출신으로 1955년 와세다대를 중퇴하고 고향인 후쿠오카 지쿠호 지역으로 돌아와 탄광 노동자와 공무원으로 일했다. 기타큐슈시 공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푸른 하늘이 좋다’는 구호를 내걸고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1970년 도바타시(현재 기타큐슈시) 직원을 사직하고, 르포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취재는 징용으로 탄광에 끌려간 조선인, 자살특공대, 군대 위안부, 이중징용, 시베리아 억류자, 사할린에서의 조선인 학살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있다. 한국에서는 하시마(일명 군함도) 관련 저작들로 유명하다. 2010년에도 <지쿠호·군함도 조선인 강제연행. 그 이후의 사진기록>이라는 책을 펴냈다. 올봄 한국 국가기록원은 일본 서남한국기독교회관으로부터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 사본 6천여점을 기증받아 공개했는데, 이때 기증받은 기록물은 그가 수집하거나 직접 생산한 기록물들이다.
그는 몇번이고 현장에 가고 취재를 피하는 이들도 끈질기게 설득하는 필사적 취재로 유명했다. 면도칼이 들어간 편지를 받는 등 우익들의 협박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전시외국인강제연행관계사료집>(1990·91년 간행, 4부로 나뉘어 모두 8권) 등 기록적인 저작물은 끈질긴 취재의 결과물이었다.
그가 조선인 강제연행 문제에 천착한 배경에는 반전주의자였으며 특별고등경찰(특고)의 고문으로 숨진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그는 2010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도주한 조선인을 곧잘 숨겨주었는데 어느날 특고가 아버지를 사상이 불순하다며 잡아가서 고문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숨겨주고 도피시킨 조선인이 300~400명에 이르는데 결국 그것이 발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후쿠오카 다가와시에 사설 자료관인 ‘아리랑문고’를 개설했으며, 투병 중이던 최근에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