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 도쿄에서 중의원 해산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극우 정치인인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신당 ‘희망의 당’ 대표 취임을 선언하며, 중앙정치 전면에 나섰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저녁 기자회견을 열어 “임시국회 첫날인 28일 중의원을 해산한다”고 선언藍다. 여당과 정부는 조기총선을 다음달 22일 실시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임시국회 첫날에 총리 연설도 국회의원들의 질의도 없을 듯 보인다.
아베 총리는 소비세율 증세분 사용 용도 변경, 그리고 북한 문제 대응을 중의원 해산 이유로 들었다. 아베 총리는 2019년 예정된 소비세율 증세(8%→10%) 수입 대부분을 지금까지는 국가 채무 변제에 쓰기로 했지만, 방침을 바꿔서 고등교육과 유아교육 무상화 등에 쓰겠다고 밝혔다. 그는 “약속했던 증세분 사용 용도를 변경하는 것이니 국민의 뜻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막기 위해서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인도와 중국 등 여러 나라에 협력을 구해왔다며 자신의 활동을 홍보한 뒤, “선거로 신임을 얻어서 강력한 외교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중의원 해산을 “국난돌파 해산”이라고 이름 붙이며 정당화했다. 그는 사학법인 스캔들 감추기용이라는 지적을 의식해 지금까지 폐회 중 심사(특정 안건이 있을 경우 임시로 여는 국회 심의)에 출석해 정중히 설명해왔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선거 목표에 대해서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쳐서 의석 과반수 확보이며, 이에 실패하면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을 포함해 개헌 찬성 세력은 중의원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임기도 내년 말까지로 보장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굳이 중의원을 돌연 해산하는 이유는 사학법인 스캔들로 흐트러진 지도력과 개헌 동력을 다시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북풍’으로 지지율이 회복되고 있어서, 선거를 치러도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5월3일 헌법기념일에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에 자위대 존재를 명시하는 규정을 추가하자고 말했다. ‘아베1강’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였다. 하지만 봄부터 자신과 가까운 이들이 운영하는 사학법인이 특혜를 받았다는 스캔들로 지지율이 하락했고, 여름이 되자 심각해졌다. 7월에는 20%대까지 추락했다.
7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는 고이케 도쿄도지사가 이끈 지역정당 ‘도민퍼스트회’에 대패를 하면서, 개헌 동력을 상실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는 “헌법 개정은 정권의 과제가 아니다”라며 견제했다. 선거를 치르지 않으면 적어도 내년 말까지 버틸 수 있지만, 지도력 손상은 회복이 어려웠다.
아베 총리에게 기회는 북한에서 왔다. 북한이 이달 들어서 6차 핵실험을 하고 홋카이도 상공을 통과하는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조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올랐다. 지난 11일 발표된 <엔에이치케이>(NHK)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석달 만에 지지율이 비지지율을 앞섰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지난 10일 후쿠오카 골프장에 있던 아소 다로 부총리를 급하게 불러서, 중의원을 해산할 뜻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소 부총리는 “지금이라면 이긴다”고 화답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자민당 의석수가 조기총선에서 이전보다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제1야당인 민진당의 보수적 의원과 고이케 신당이 차지할 의석수까지 합치면 개헌 세력 유지가 가능하다고 계산하는 듯하다.
간토(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추도문 송부를 거부한 고이케 도쿄도지사는 아베 총리보다 몇시간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서 신당인 ‘희망의 당’ 대표로 취임한다고 밝혔다. 그는 “개혁·보수세력을 만들고 싶다”며 헌법 개정을 공약의 하나로 들었다. ‘희망의 당’은 자민당 출신의 와카사 마사루 의원, 제1야당 민진당을 탈당한 호소노 고시가 결성을 준비해왔다. 27일 정식 결성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희망의 당’에 대해서 “어감이 좋다. 신당은 우리와 안전보장에 대한 기본적 이념이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1야당인 민진당의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는 “중의원 해산 이유가 전혀 설득력이 없다. 2년 뒤 하는 소비세율 증세가 왜 지금 중의원 해산의 이유가 되어야 하느냐”고 말하며, 사학법인 스캔들 감추기용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에게 이번 선거는 쉽지 않은 선거가 될 전망이다.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서 조기총선 때 자민당에 투표하겠다는 이들이 27%로 민진당(8%)의 세배 이상이었다. 고이케 신당에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도 6.2%, 공산당은 3.5%였다. 다만 부동층이 42.2%였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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