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도쿄에서 일본기자클럽이 주최한 당수 토론에서 일본 정당 대표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마쓰이 이치로 일본유신회 대표,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 아베 신조 자민당 대표, 고이케 유리코 희망의 당 대표, 시이 가즈오 공산당 대표. 도쿄/AP 연합뉴스
오는 22일 중의원 조기 총선을 앞두고 일본이 선거 열기로 뜨겁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는 청중들의 야유를 꺼린 나머지 거리연설 일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여당 자민당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지난 4일까지는 아베 총리의 거리연설 일정을 공개했지만, 이후에는 비공개로 전환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일 지바현 가시와역에서 사전에 일정을 알리지 않은 채 거리연설에 나섰다. 자민당 지지자들이 역 앞에 진을 치고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 ‘자민당밖에 없다’는 손팻말을 들고 응원에 나섰지만 야유는 사라지지 않았다. 30여명의 청중은 아베 총리의 연설이 사작되자 “모리토모·가케학원 문제를 설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도쿄신문> 등은 전했다. 연설 도중 “그만둬” 같은 야유도 나왔다. 일부는 아베 총리가 지난달 25일 중의원 해산 선언을 할 때 “국난 돌파 해산”이라고 주장한 것을 비꼰 ‘당신이 국난’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었다. “거짓말쟁이에 속지 말자”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는 이도 있었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거리연설 일정 공표를 중지한 이유에 대해서, 자민당 본부는 “북한 문제가 있어서 유세 일정을 마지막까지 조정하느라 그렇다”고 설명하지만, 청중들의 야유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아키하바라 트라우마’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월 도쿄도의회 선거 때 도쿄 아키하바라역 앞에서 자민당 후보 지원 연설에 나섰다가 청중들이 “아베 그만둬” 같은 야유를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아베 총리는 당시 야유와 항의를 하는 이들을 향해 “이런 사람들에게 질 리가 없다”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가 논란을 빚었다.
아베 총리가 거리연설 일정을 공개하지 않자, 아베 총리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연설 일정을 알아내 인터넷에서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국난이 온다’ 또는 일본 정부의 북한 미사일 경보시스템 명칭에 아베 총리의 머리글자를 섞은 ‘에이(A) 얼러트’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일정을 인터넷을 통해 알리고 있다.
일본 조기총선 구도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신당 ‘희망의 당’과 희망의 당에 사실상 흡수된 제1야당 민진당, 고이케 지사의 우파적 노선에 반발한 민진당 인사들이 만들고 에다노 유키오 전 관방장관이 대표로 취임한 신당 ‘입헌민주당’을 중심으로 크게 3개 세력이 대립하는 구도다.
주말인 7일부터 인터넷과 텔레비전 방송, 일본기자클럽에서 잇따라 당 대표 토론이 열렸다. 토론에서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욕을 보였고, 고이케 대표도 개헌 찬성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베 총리는 7일 인터넷 방송 <니코니코생방송>이 중계한 토론회에서 “자위대를 분명히 헌법에 명기해 무모한 논쟁을 없애겠다”며 교전권 포기 조항인 9조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다. 고이케 대표는 “필요에 따라 헌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나는 아베 정권에서 방위상에 임명된 적이 있다. (아베 총리와 기본적 이념에)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8일 오전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당수 토론에서도 아베 총리는 “아이들이 자위대가 위헌이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며 개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고이케 대표는 9조 자체에 논의를 집중하는 것은 반대한다면서도 개헌 자체에는 찬성했다.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대표와 시이 가즈오 공산당 대표는 개헌에 분명히 반대했고, 고이케 지사와 연대한 일본유신회 마쓰이 이치로 대표와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는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며 분명한 언급은 피했다.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거와 같은 압승을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개헌 찬성파가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해 선거 뒤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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