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아베 표가 분산돼 여당이 압승한 것이다. 아베 총리가 지지를 받았다고는 보기 어렵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평화헌법 흔들기를 비판해온 대표적 진보진영 학자인 나카노 고이치 조치대 교수(정치학)는 중의원 선거 다음날인 23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결과를 이렇게 진단했다. 나카노 교수는 2015년 야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출범한 시민단체인 ‘안보법제 폐지와 입헌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연합’(시민연합)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아베 정부의 폭주를 견제하기 위한 강연 등을 활발하게 해왔다.
-아베 총리가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해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간다는 우려가 커졌다. 선거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나?
“아베 총리가 인기가 있어 이긴 게 아니다. 내각 지지율은 선거가 치러진 이달에 오히려 하락했다. 아베 정부는 선거 전에도 중의원과 참의원 의석의 3분의 2(개헌안 발의 가능 의석)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선거 전과 거의 같다. 아베 정부는 선거 전에도 많은 여당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헌법 개정으로 가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내각 지지율이 하락한다면 헌법을 바꿀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야당인 민진당이 사실상 해체되면서 일본의 리버럴(진보)이 끝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민진당 내부에는 보수와 진보 정치인들이 같이 있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한 안보법제에 대해서는 민진당이 상당히 진보적 입장이었다. 그런데 마에하라 세이지가 대표가 되면서 안보법제 반대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냈고, 민진당 해체와 ‘희망의 당’ 합류 같은 결정이 나왔다. 이후 에다노 유키오가 입헌민주당을 창당해 리버럴한 정치 세력을 규합해 진보적인 세력이 오히려 확실한 형태로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입헌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올라서면서 의석수는 적지만 존재감이 부각됐다.”
-하지만 에다노 대표도 “우리들은 리버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리버럴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일본 사회의 거부감이 강해 보인다.
“리버럴이라고 하면 한쪽에 치우친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에다노 대표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본다. 2차대전 뒤 만들어진 헌법을 통해 일본 사회에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대전제로 깔리게 됐고, 여기에서 전후체제가 형성됐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전후체제의 탈각”, “일본을 되돌려놓겠다”는 등의 말을 해 전후체제를 중단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전후체제를 지키는 것이 보수라고 본다면, 전후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하는 아베 총리는 오히려 보수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이번 중의원 총선 압승으로 전후체제를 변화시킬 힘을 가지게 됐다고 보는가?
“위험성은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입헌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올라섰고 의석수를 전보다 대폭 늘린 유일한 정당이 됐다. 어느 정도는 아베 총리의 전후체제 변화 시도를 멈추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베 총리가 실각해도 일본의 우경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보는가?
“아베 총리가 실각한다고 우경화가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아베 총리가 우경화를 진행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일단 그를 멈추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경화 흐름 속에서 리버럴 좌파가 굉장히 약해졌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반대편에 있는 리버럴 좌파가 어느 정도 강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도쿄/글·사진 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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