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열린 일본 중의원 대표질문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답변을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이케다 하야토 전 총리의 정치적 자세는 관용과 인내였다.”(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오히라 마사요시 전 총리의 이념은 타원의 철학이었다. 타원처럼 두 개의 중심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바람직하다는 것으로 온건 보수의 철학이다.”(다마키 유이치로 ‘희망의 당’ 대표)
20일 일본 중의원에서 대표질문에 나선 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자민당 보수 본류로 꼽히는 고치카이 파벌의 중심 인물들을 언급하며 아베 신조 총리에게 견제구를 날렸다. 대표질문은 국회 개회 때 총리의 국정 운영 방침에 대해 각 정당과 그룹의 대표 등이 정부에 질문을 던지는 것을 말한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서로 지지가 되는 사회”를 역설하며 고치카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소 강연에서 자신의 이런 입장에 대해서 “고치카이적”이라고 언급해왔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여야가 입을 모아 언급한 고치카이는 올해 창립 60돌을 맞은 전후 최장수 파벌이다. 1957년 이케다 하야토가 중심이 돼 결성한 파벌로, 이케다와 오히라 등 4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고치카이를 결성한 이케다는 요시다 시게루의 ‘경무장·경제집중’ 노선을 계승했으며, 총리 재임 중 소득을 갑절로 늘린다는 소득 배증 계획을 내걸고 1960년대 고도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그를 “트랜지스터 라디오 세일즈맨”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일본 내에서는 최근 <질풍의 하야토>라는 이름으로 그를 재조명한 만화책이 인기를 끌었다.
고치카이 소속 의원들의 성향이 모두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비둘기파 이미지가 강하다. 현재 고치카이는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흔히 기시다파로 불린다. 자민당 내 네번째 파벌(소속 의원 44명)로 소수파다. 2000년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 이후 정치 우경화가 본격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고치카이도 함께 쇠퇴했다. 온건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수인 고치카이에 대한 향수가 이는 배경에는 일본 정치의 급속한 우경화에 대한 우려도 작용한다.
일본 정치에서 고치카이뿐 아니라 파벌 자체가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 1996년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꾼 점이 결정적이었다. 중선거구제에서는 한 선거구에 여러 후보를 낼 수 있어서 파벌 영수의 영향력이 강했으나, 소선거구제에서는 1명의 후보만을 낼 수 있어 당 중앙에 힘이 집중됐다.
하지만 일본 정치에서 파벌은 아직 뿌리가 깊으며, 자민당 파벌들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민진당 등 야당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파벌 간 정권 교체라는 역할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아소 다로 부총리는 자신이 이끌던 아소파에 산토파와 다니가키그룹 일부를 규합해서 당내 두번째 파벌인 신아소파(소속 의원 59명)를 출범시켰다. 기시다 정조회장은 최근 고치카이 이념을 강조하며 차기 총리를 노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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