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김종필 증언록 일본어판 출간 기념 기자회견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오른쪽) 전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100살을 앞둔 나카소네 전 총리는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나카소네 야스히로(99) 전 일본 총리가 1980년대에 한국 정부의 국교 수립 의사를 중국에 전달한 사실이 일본 외무성에서 20일 비밀해제한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나카소네는 총리이던 1986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후야오방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만나 “한국 수뇌부가 ‘중국과 국교를 맺거나, 국교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교류를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후 총서기는 “(한국의) 대중 관계 개선 희망은 좋은 것이지만,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려면) 북한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이해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거절했다. 한-중은 4년 뒤인 1990년 무역대표부를 설치하면서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고 92년에 수교했다.
당시 나카소네 총리는 한국이 중국과 무역·통상 대표부 상호 설치를 희망한다고 전하면서 동시에 “(국교가 수립되지 않은) 일본과 북한 사이에도 같은 방식을 취할 용의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후 총서기는 “북한에 (일본의 생각을) 흘려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후 총서기는 나카소네 총리와의 회담 2개월 뒤 실각했다.
나카소네가 한-중과 북-일의 동시 관계 개선 구상을 내놓은 배경에는 옛 소련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나카소네 총리는 후 총서기에게 “(무역사무소 설치를 통해서) 북한이 북극해(옛 소련) 쪽으로 가지 않고 우리 쪽으로 향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후 총서기는 나카소네 총리에게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느슨한 연방제를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말했다. 후 총서기는 중국이 남북한과 미국 3개국 대화를 북한에 타진했으나 북한이 중국의 제안에 대해 “화를 냈다”고도 말했다.
후 총서기는 나카소네 총리에게 중국 국내 정치와 관련해 “노년층을 은퇴시키겠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얼마 뒤 당 원로들이 오히려 개혁 정책을 추진하던 후 총서기를 밀어냈다.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내건 나카소네 전 총리는 일본 신보수 정치의 출발을 알린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많다. 총리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1986년 일본에 야스쿠니 대체 시설을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아베 신조 정권에서 우경화가 훨씬 심해진 상황이라 나카소네 전 총리는 오히려 온건해 보이기도 한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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