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정기의회 개회를 맞아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담겨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일 관계를 한 단계 더 격하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한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후속 조처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22일 정기국회 개회 시정연설에서 2015년부터 한국에 대해 써온 “중요한 이웃 나라”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2013·2014년 연설에서는 한국에 대해 “기본적인 가치나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했지만, 2015년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 2016년과 지난해에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표현해 한-일 관계의 격을 낮췄다. 올해는 그나마 이 표현마저도 없었다.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 이름을 언급하며 “지금까지 양국 간의 국제적 약속, 상호 신뢰 축적 위에서 미래 지향적이고, 새로운 시대의 협력 관계를 심화시키겠다”고만 언급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말, 위안부 합의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밝힌 데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에 이어 외교 연설에 나선 고노 다로 외상은 직접적으로 일본 정부의 속내를 드러냈다. 고노 외상은 “일-한 합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확인한 양국의 약속이다. 이를 지키는 것은 국제적, 보편적 원칙”이라며 “일본 쪽은 일-한 합의로 약속한 것은 모두 성실하게 실행해왔으며, 한국도 책임을 갖고 합의를 착실히 실시할 것을 계속해서 강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과 달리 중국에 대해서는 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올해는 일-중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이다. 경제, 문화,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양국 국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강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적절한 시기에 내가 방중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며 일-중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중국과 협력해서 증대하는 아시아 인프라 수요에 부응하겠다”며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협력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연설에서는 중국보다 한국을 먼저 언급했으나 올해는 순서가 반대였다.
아베 총리는 개헌에 대해서는 “각 당이 헌법의 구체적 안을 국회에 가져와서 헌법심사회에서 논의를 심화해 앞으로 전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며 개헌 의지를 더욱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시정연설에 앞서 열린 자민당 의원총회에서 “드디어 실현할 때가 다가왔다”며 개헌에 대한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연말까지 방위대강 재검토를 추진해 나가겠다”며 군사력 증강 의욕도 나타냈다. 북한 미사일 요격을 위한 육상형 이지스(이지스 어쇼어) 도입뿐 아니라 스탠드오프(stand-off) 미사일을 도입할 계획을 밝혔다. 스탠드오프 미사일은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베 총리는 올해가 메이지유신 150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야마가와 겐지로나 도요다 사키치 같은 메이지 시대 인물들의 발언을 주요하게 소개했다. 메이지유신이 일본의 빛나는 역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개헌 필요성과 연결하는 논리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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