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리 시게타카 후지필름홀딩스 최고경영자(CEO)가 31일 일본 도쿄에서 미국 제록스 매수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창업 100년이 넘은 ‘복사기의 대명사’ 미국 제록스가 일본 후지필름에 팔린다. 후지필름은 제록스에서 기술을 지원받아 1962년 사무기기 회사인 후지제록스를 설립했는데, 반세기만에 본가인 제록스를 삼켰다.
일본 후지필름홀딩스는 31일 미국의 대표적 사무용품 기기 업체인 제록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먼저 후지필름홀딩스와 미국 제록스의 합작 회사인 일본 후지제록스가 미국 제록스와 경영을 통합한다. 제록스는 증자를 하고, 후지필름홀딩스가 증자 때 6700억엔을 투입해 제록스 주식 50.1%를 취득한다. 결과적으로 미국 제록스는 후지필름홀딩스의 자회사가 되는 것이다.
미국 제록스는 1906년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사진 인화지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출발했다. 제록스는 1950년대 발명가인 체스터 칼슨과 협력해 일반용지로도 대량 복사가 가능한 상업용 건식 복사기 개발에 착수했다. 1959년 세계 최초의 사무용 자동복사기로 평가받는 복사기 ‘제록스 914’를 내놓는다. 이후 제록스(xerox)는 영어로 복사하다는 뜻으로 쓰일 정도로 복사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제록스는 이메일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사무실 업무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복사기 수요 감소로 최근 고전했다. 건강 관리 등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제록스 주가는 전성기인 1990년대 160달러대까지 치솟았으나 최근에는 30달러 수준이다. <뉴욕타임스>는 제록스가 과거에 거둔 큰 성공 때문에 새로운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능숙함의 덫(competency trap)’에 빠져 몰락했다고 지적한다.
후지필름홀딩스는 제록스 매수 뒤 매출이 3조3000억엔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미국 휼렛패커드(HP)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사무기기 업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원은 2020년까지 1만명을 감원한다고도 발표했다. 고모리 시게타카 후지필름홀딩스 최고경영자(CEO)는 31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시아 등에서는 늘어날 (사무기기) 시장이 있다”고 말했다. 후지필름홀딩스는 그동안 합작관계인 제록스 때문에 미국과 유럽 시장에는 진입하지 못했는데, 회사 통합 뒤 제한이 없어진다. 또한,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 제록스의 기술력을 활용해 보다 공격적인 시장 개척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제록스를 사들인 뒤 후지필름홀딩스는 전체 매출에서 사무기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3분의2까지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후지필름홀딩스도 세계적인 사무기기 수요 감소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위험성도 안고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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