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한승헌 변호사가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주오대의 스루가다이 기념관에서 열린 이토 나리히코 주오대 명예교수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조기원 도쿄특파원
“한국 사회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에 대한 보도가 거의 없던 시대에도 선생은 진상 규명 운동을 폈다. 선생이 걸어온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적 발걸음을 존경해왔다. 이번 추도회가 ‘뜻을 이어받는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토 나리히코 주오대 명예교수의 추도식이 25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주오대 스루가다이 기념관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추모사에서 한승헌 변호사는 “반전과 평화를 위해 뛰어온 실천적 지식인”이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한 변호사는 출판사를 운영하던 1978년 이토 명예교수가 쓴 <김대중 납치 사건의 전모>를 한국에서 번역·출판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11월29일 86살로 별세한 이토 명예교수는 전후 일본 사회운동 전반에 걸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그는 원래 폴란드 출신 사회주의 운동가인 로자 룩셈부르크 연구로 유명한 독문학자이자 문예평론가다. 하지만 강단에만 머물지 않고 평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진보적 잡지 <세카이>(세계)의 발행인 오카모토 아쓰시 사장은 추도식에서 “(이토 명예교수는) 국제적인 일본 사회운동의 중심이었다, 테마는 군축·평화, 반핵, 헌법 수호부터 일·한 연대와 일·중 상호 이해를 위한 운동까지 매우 다양했다”고 평가했다.
고 이토 나리히코 교수는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때부터 진상규명 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사진 조기원 도쿄특파원
이토 명예교수는 1973년 도쿄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이 터지자 진상 규명에 앞장섰고, 83년 일본 정부가 사건 발생 10년이 지났다며 수사본부를 해체하자, 이듬해 대학교수·목사·언론인 등과 함께 독자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결성했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이날 한 변호사를 통해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서 “김대중 납치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선생의 헌신은 당사자인 나의 남편뿐만 아니라 여러 한국인에게 깊이 각인되었다”고 전했다. 이토 명예교수는 94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국제회의에 참가했고,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수요시위(집회)에도 참가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사과했다.
고 이토 나리히코(왼쪽) 일본 주오대 명예교수는 지난 2014년 5월 14일 오후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가해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김복동 할머니 등에게 일본의 잘못을 사과하고 카네이션과 선물을 전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고인은 일본 평화헌법 수호를 위해서도 노력해왔다. 2001년 <일본 헌법 제9조>를 펴냈다. 쓰지 메구무 전 중의원 의원은 “앞으로 헌법 개정 국민투표 같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지 모른다. 선생은 아베 신조 정권의 위험한 (헌법 개정) 시도에 대해서 걱정해왔다. 여러분과 함께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한 추도식 참석자는 “이토 선생이 마지막 순간까지 했던 일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것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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