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아세안’ 영향력 활용 전략…일, 참가국 늘려 중국 견제 속내
동아시아공동체 논의의 주도권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신경전이 한창이다. 양쪽은 12월 중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잇따라 열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12일)와 동아시아정상회의(14일)의 선언문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이 입수해 29일 보도한 선언문 초안을 보면, 아세안+3에선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분명하게 언급한 반면, 오스트레일리아·인도·뉴질랜드도 참가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선 이를 전혀 거론하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아세안+3의 초안은 이 회의가 “(공동체의) 중요한 추진역”이며 “장기적 목표인 공동체 구축에 기여한다”고 명시했다. 이 회의를 향후 동아시아공동체 논의의 주무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반면, 동아시아정상회의의 초안은 “동아시아에 공통되는 전략적·정치적·경제적 문제를 논의하는 개방되고 투명한 포럼”이라며 정상들이 얼굴을 맞대는 자리로 회의의 성격을 규정했다.
이들 선언문 초안에는 중국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참가국이 너무 많아지면 구심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아세안+3을 논의의 구심점으로 삼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아세안 나라들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동아시아정상회의를 통한 미국의 논의 참여를 막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일본은 “정상회의를 폐쇄적으로 운영해선 안된다”며 견제에 나섰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선언문 초안이) 일단 백지상태가 됐다”고 밝혀 선언문 채택이 상당한 난항을 겪을 것임을 예고했다. 두 나라는 이미 동아시아정상회의에 미국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하는 문제를 놓고도 한바탕 힘겨루기를 한 바 있다. 일본으로선 중국에 동아시아 지도국의 자리를 빼앗기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논의의 참여 범위를 넓힘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저하를 꾀한다는 게 일본의 대응책이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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