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북-일 정상회담을 향해 움직이면서 ‘속도전’에 나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도통신>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복수의 북-일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 총리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여러 통로로 북한에 전달했다고 21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방북 때 합의한 ‘북-일 평양선언’을 이행하는 것이 북한에도 이익이 되니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 일본의 메시지라고 전했다. 또 일본인 납치와 핵·미사일 문제도 같이 논의하자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통신은 고노 다로 외상이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만났을 때와,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이런 의사를 북한에 전달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아베 총리가 방북하면 2004년 고이즈미 총리의 2차 방북 뒤 14년 만이 된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2일 이에 대한 질문에 “북한과는 정부 간 협의와 중국 베이징 대사관 루트 등 다양한 기회와 수단을 통해 (의견을) 교환해왔다”며 정상회담 추진설을 부정하지 않았다.
최대한의 압박을 강조하던 일본이 정상회담까지 추진하는 데는 두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으로 대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일본이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일본은 북-미 정상회담 계획이 발표된 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게 되면 초기 비용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한국에 전달했다. 둘째는 모리토모학원 스캔들과 관련해 재무성 공문서 조작 여파로 내각 지지율이 31%까지 떨어져 아베 정부의 위기가 심화된 상황이다. 북-일 정상회담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국면을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북-일 정상회담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일본은 대북 압력을 강조하는 기본 방침 자체는 바꾸지 않아, 북한이 일본과의 교섭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7일 “우리는 이미 일본 반동들이 분별을 잃고 계속 못되게 놀아대다가는 영원히 평양행 차표를 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데 대하여 경고하였다”는 논평을 냈다. 아베 정부도 대북 정책을 갑자기 대화 쪽으로 변경하면 국내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납치 문제의 진전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도 난제다. 북한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 방북 당시 납치에 대해 인정하고 사죄하며, 피랍자 13명 중 5명이 생존해 있고 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생존자 5명을 돌려보냈지만, 일본 여론은 사망자들에 대한 발표를 믿기 어렵고 피랍자들이 더 있다며 반발했다. 결국 양국은 국교 정상화로 나가지 못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1차 방북 때 대북 강경론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당시 관방부장관이던 아베 총리였다. 북한은 납치 문제는 북-일 평양선언 때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일본은 피랍자 전원 귀국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양쪽의 간격이 커서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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